자율주행의 해외 진출은 오랫동안 시범운행의 다른 이름이었다. 도로를 빌리고, 기간을 정하고, 리포트를 남기고 철수한다. 그런데 아부다비에서는 이미 승객을 태우고 굴러가던 서비스의 차량이 통째로 바뀐다. 중국산 자율주행차로 운영되던 스페이스42의 TXAI에,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110억원어치 차량과 운영 인프라를 넣는 계약이 성사됐다1.

국내 실증 102만km K-City에서 UAE 로직 개발 싱가포르 합작법인 A2G 아부다비 운행 차량 19대 교체
110억 스페이스42 직접 공급 계약 규모 · 합작법인과 별개 건
19대 로이 8 · 기아 PV5 5 · 카니발 5 · MAN 버스 1
102만km 국내 누적 자율주행 거리 · 임시운행 허가 91대

왜 '신규'가 아니라 '교체'였나

이 계약은 성격부터 봐야 한다. 새 노선을 열어 시범운행을 시작하는 방식이 아니다. 스페이스42가 아부다비에서 이미 운영 중인 자율주행 서비스 TXAI의 차량을, 중국산에서 에이투지 차량으로 바꾸는 계약이다1. 파일럿은 실패해도 리포트 한 장으로 정리되지만, 운행 중인 서비스의 차량 교체는 승객·규제·운영 지표가 그대로 걸린다. 발주처 입장에서 리스크의 종류가 다르다.

이미 승객을 태우는 서비스에서 차를 갈아끼운다는 건, 발주처가 기술 검증을 계약 이전에 끝냈다는 뜻이다. 실제로 스페이스42 관계자들은 계약에 앞서 국내 실증 현장과 경기 화성 K-City의 차량 개발·검증 환경을 직접 확인했다1. 자료를 본 게 아니라 라인을 본 것이다. 자율주행 조달에서 실사의 대상이 데모 영상에서 생산·검증 환경으로 내려오면, 거래는 기술 소개가 아니라 공급망 계약이 된다.

담보가 된 숫자는 국내에 쌓여 있었다. 에이투지는 국내 13개 시·도 자율주행 시범사업에 참여했고, 자율주행 임시운행 허가 91대와 누적 주행거리 102만km를 확보했다1. 해외 발주처가 실제로 사는 건 알고리즘 자체가 아니다. 그 알고리즘이 각기 다른 도로에서 몇 년치 거리를 사고 없이 굴렀다는 이력, 그리고 그 이력을 만들어낸 조직의 운영 능력이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이번 계약은 두 회사가 UAE에 세운 합작법인과는 별개인 직접 공급 계약이다1. JV 안에서 소화되는 내부 물량이 아니라, 별도의 구매 결정이 한 번 더 내려졌다는 뜻이고 계약의 무게는 여기서 갈린다. 합작법인은 보통 파트너십의 형식을 만들지만, 형식 바깥에서 나온 발주가 그 파트너십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증거다.

파일럿 수출과 무엇이 달랐나

통상적인 자율주행 해외 진출은 데모카 몇 대와 기간 한정 노선으로 끝난다. 기술을 보여주고, 현지 파트너를 소개받고, 다음 라운드를 기약한다. 이번 건은 차량·관제·원격제어·앱 연동이 한 묶음으로 넘어간다1. 표로 놓고 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영역통상적 자율주행 해외 진출에이투지 · 아부다비 계약
진입 형태신규 시범 노선 개설운영 중 상용 서비스의 차량 교체
납품 범위차량 단품 또는 SW 라이선스차량 19대 + 관제 시스템 + 원격제어 콕핏 + 앱 연동
차량 구성단일 플랫폼 데모 차량로보셔틀·MPV·승합·버스 4종 혼합
생산 방식본국 제작 후 전량 반출로이만 국내 완성차, 나머지는 현지 조달 후 개조
종료 조건기간 만료 후 철수2027년 이후 DRT·관광형 셔틀로 서비스 전환

특히 차량 구성이 이 계약의 정체를 드러낸다. 총 19대 중 운전석이 없는 레벨4 로보셔틀 로이(ROii)가 8대, 나머지는 기아 PV5 기반 5대, 카니발 기반 5대, MAN 버스 기반 1대다1. 자사 완성차 한 종으로 채운 납품이 아니라,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차체 위에 자율주행 스택을 얹는 구조다. 로이는 국내에서 완성차로 만들어 하반기 현지로 보내고, 나머지 11대는 현지 조달 후 개조한다1. 차량은 하반기 사디야트섬과 야스섬에 일부 투입돼 시범운행에 들어가며, 버스 투입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1.

110억까지 온 3단계

  1. 로직을 현지 규격으로 다시 짰다 국내에서 검증한 스택을 그대로 들고 나가지 않았다. 경기 화성 K-City에서 UAE 공도주행용 자율주행 로직을 별도로 개발했다1. 도로 규칙·차선 체계·주행 관습이 다른 시장에서 이 단계를 건너뛰면, 현지 실증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다.
  2. 계약할 법인을 먼저 만들었다 현지 사업 개발과 계약 실무는 에이투지가 킬사글로벌과 싱가포르에 세운 합작법인 A2G가 맡았다. 2024년 7월 설립 업무협약을 거쳐 지난해 설립 계약을 마무리했다1. 기술 회사가 중동 조달 시장에서 가장 자주 걸리는 지점이 계약 주체와 현지 실무이고, 이 회사는 그걸 계약보다 먼저 세웠다.
  3. 발주처를 한국으로 불렀다 스페이스42 관계자들은 계약 전 국내 실증 현장과 K-City 개발·검증 환경을 살폈고, 2025년 10월에는 경주를 찾아 직접 시승했다. 같은 로이는 APEC 2025에도 투입됐다1. 파는 쪽이 가서 보여주는 대신, 사는 쪽이 와서 확인하게 만든 순서다.
"세계 각국이 미래 모빌리티의 전장으로 각축을 벌이는 중동에서 국산 기술로 거둔 성과다. 국내 기술개발과 다양한 실증으로 구축한 자율주행 기술이 해외 수출과 현지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1

The Bet — 파는 것은 차가 아니라 이식성이다

19대라는 숫자만 보면 작은 계약이다. 그러나 그 19대의 구성이 회사의 베팅을 그대로 보여준다. 8대는 자사 완성차, 11대는 남의 차체 위에 얹힌다1.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핸들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작동하는 범용 레벨4를 만들겠다는 것이고4, 최근 글로벌 팁스에 선정되며 내건 명분도 범용 피지컬 AI 기반의 해외 확장이었다5.

The Bet

완성차를 파는 회사는 공장 규모에서 진다. 에이투지가 건 쪽은 차체에 종속되지 않는 레벨4 스택이다. 로보셔틀·MPV·승합·버스 4종에 같은 스택을 얹고, 그중 11대를 현지에서 조달해 개조하는 방식이 성립한다면 수출의 단위는 '차량'에서 '노선'으로 바뀐다. 관제 시스템과 원격제어 콕핏, 스페이스42 앱 연동 호출까지 함께 넘긴 것도 같은 계산이다1. 차를 파는 계약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운영 인프라를 깐 계약은 노선이 늘 때마다 다시 돌아온다. 반대편의 리스크는 명확하다. 앱·수요·요금 정책은 스페이스42가 쥐고 있고, 에이투지는 아직 그 서비스 안의 공급자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1. 하반기 실제 투입 대수 차량은 하반기 사디야트섬·야스섬에 일부 투입돼 시범운행에 들어간다1. 19대 중 몇 대가 언제 도로에 올라오는지가 첫 체크포인트다. 계약 규모보다 배치 속도가 운영 능력을 보여준다.
  2. MAN 버스 투입 시점 4종 중 버스만 투입 시점이 정해지지 않았다1. 대형 차량은 인증·안전 기준이 가장 무거운 구간이고, 이 한 대가 언제 붙느냐가 '차체 무관 스택'이라는 주장의 실측값이 된다.
  3. 2027년 서비스 전환 여부 현지 도로 환경과 수요를 검증한 뒤 2027년 이후 수요응답형 교통(DRT)과 관광형 셔틀로 전환할 계획이다1. 전환이 실제로 발주로 이어지면 이번 110억은 단발 수출이 아니라 반복 매출의 진입 티켓이 된다.
결국 에이투지가 판 건 차 19대가 아니라, 남의 차에 얹히는 레벨4 스택과 그 스택을 굴릴 관제망이다.
다음 계약이 아부다비 밖에서 나오는지가, 이 수출을 사건으로 남길지 흐름으로 만들지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