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연산 수요가 폭발하는 동안, 육지의 인프라는 멈추고 있다. 미국 주요 데이터센터 거점에서 신규 시설 허가는 수년씩 밀리고, 전력망 용량 한계를 이유로 지자체가 신규 입주를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른다1. 그 교착 속에서 판탈라사(Panthalassa)는 전제를 바꿨다 — AI 연산을 바다 위에서 하면 된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본사를 둔 이 해양 에너지·컴퓨팅 스타트업에, 피터 틸과 파운더스 펀드, 한화그룹을 포함한 컨소시엄이 $140M(약 1,820억원)의 시리즈B를 집어넣었다1.
왜 '바다'였나 — 육상 인프라의 교착이 만든 역설적 기회
AI 인프라의 병목은 칩 공급이 아니다. 전력과 땅이다. 북미 주요 데이터센터 집적지에서 전력망은 이미 한계 용량에 근접했고, 지자체들은 신규 대형 데이터센터의 전력 연결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인허가 절차는 수년, 변전소 증설은 수십억 달러다. 빅테크가 쏟아내는 AI 인프라 투자 발표와 실제로 삽을 꽂을 수 있는 부지 확보 사이의 간극이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1.
판탈라사의 접근은 이 구조적 병목을 정면 돌파하지 않는다. 우회한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은 바다다. 바다에는 토지 인허가가 없고, 파도는 24시간 에너지를 공급하며, 해수는 무제한 냉각재다. 판탈라사의 자율 부유 노드는 파도의 기계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고, 그 전기를 외부로 송출하지 않는다. 대신 노드 내부에 탑재된 AI 칩에 직접 공급해 추론 연산을 수행한다. 주변 해수를 냉각재로 활용해 발열 문제를 해결하고, 연산 결과만 저궤도 위성 네트워크를 통해 육지로 보낸다1. 선박도, 해저 케이블도, 중간의 육상 데이터센터도 필요 없다.
육상 데이터센터의 두 가지 최대 비용 항목인 외부 전력 조달과 냉각 시스템을, 판탈라사 노드는 파도와 바닷물로 자체 해결한다. 이 구조는 단순히 '청정 에너지 데이터센터'가 아니다.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같은 하드웨어 안에서 일어나는, 전송 손실 없는 수직 통합 모델이다. 송전선을 통해 에너지를 먼 곳으로 옮기는 대신, 연산 장치를 에너지 생산 현장 옆에 붙인다는 역발상이다.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가스 셸던-쿨슨(Garth Sheldon-Coulson)은 MIT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에서 시니어 투자 어소시에이트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1.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이 아닌 금융 분석가가 이 사업을 설계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판탈라사는 단순한 파도 에너지 회사가 아니라, 에너지·컴퓨팅·위성 통신을 하나의 수익 구조로 묶은 사업 모델로 설계됐다.
구조 비교 — 전통 데이터센터 vs 판탈라사 자율 부유 노드
| 비교 영역 | 전통 육상 데이터센터 | 판탈라사 자율 부유 노드 |
|---|---|---|
| 전력원 | 외부 전력망 의존 (화석연료 혼재) | 파도 에너지 자체 변환 · 전력망 독립1 |
| 냉각 방식 | 냉각탑·냉동기 · 대규모 냉각수 소비 | 주변 해수 직접 활용 · 별도 냉각 인프라 불필요1 |
| 인프라 허가 | 부지·환경 심사·전력 연결에 수년 소요 | 해양 배치로 육상 인허가 병목 우회1 |
| 데이터 전송 | 지상 광케이블 네트워크 | 저궤도 위성 · 지상 인프라 독립1 |
| 입지 결정 요인 | 전력 인프라·토지 가용성에 종속 | 파도 자원 지도에 따라 자유 배치1 |
세 가지 레이어 — 판탈라사가 쌓은 기술 구조
- 에너지 레이어 — 파도를 전기로 자율 부유 노드는 해상 파도의 기계적 운동 에너지를 포획해 전기로 변환한다1. 이 전력은 육지로 송출되지 않고 노드 자체의 AI 시스템에 공급된다. 판탈라사가 공개한 노드 최대 가동률 90%1는 상업 데이터센터의 SLA 수준과 비교 가능한 수치다. 파도 에너지가 예상보다 안정적인 공급원임을 뒷받침하는 첫 번째 기술적 증거다.
- 컴퓨팅 레이어 — 에너지 생산지에 AI 칩을 변환된 전기는 노드 내에 탑재된 AI 추론 칩에 직접 공급된다1. 연산은 노드 안에서 완결된다. 이 구조는 에너지와 칩 사이의 송전 손실을 없애고, 클라우드 기반 추론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왕복 레이턴시를 구조적으로 줄인다. AI 추론을 '어디서 사느냐'가 아닌 '에너지가 있는 곳에서 한다'는 원칙 전환이다.
- 전송 레이어 — 결과만 위성으로 추론 완료 후 결과 데이터만 저궤도 위성을 통해 육지로 전달된다1. 원본 입력 데이터를 해상까지 전송하고 다시 결과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추론 결과만 반환하는 구조는 위성 대역폭 부담을 대폭 줄인다. 선박·해저 케이블 없이 운용 가능한 완전 독립 네트워크 구조로, 지리적 배치의 유연성을 극대화한다.
The Bet — 왜 피터 틸과 한화가 같은 테이블에 앉았나
이번 시리즈B의 투자자 구성은 이례적이다. 피터 틸과 파운더스 펀드는 기술 혁명의 조기 베팅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 VC고, 한화그룹은 에너지·해양·우주 사업을 보유한 한국 산업 복합체다1. 로워카본 캐피털은 기후 솔루션 전문 VC, 기가스케일 캐피털과 수스케하나 서스테이너블 인베스트먼트는 대규모 인프라와 지속가능성에 특화된 투자자다1. 이 조합이 한 캡 테이블에 모였다는 것은, 판탈라사가 단일 섹터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신호다 — 에너지 전환, AI 인프라, 해양 기술, 위성 통신이 하나의 구조 안에 교차한다. 베팅의 전제는 하나다: 육상 AI 인프라의 전력·냉각·인허가 병목은 수년간 해소되지 않는다.1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판탈라사의 해상 노드는 대안에서 주류로 이동한다. 누적 조달액 $210M(약 2,730억원)1은 이 회사가 파일럿 단계를 지나 상업 배치를 향한 자본 준비를 마쳤다는 선언이다. 한화그룹의 참여는 재무적 투자를 넘어 해양 하드웨어·위성 사업과의 전략적 접점 가능성을 열어둔다1.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 오션-3 북태평양 파일럿 배치 달성 여부 (2026) 판탈라사는 2026년 북태평양에 오션-3(Ocean-3) 파일럿 노드를 배치할 계획이다1. 이 배치가 예정대로 실행되는지, 실해역 환경에서 최대 가동률 90%를 재현하는지가 기술 신뢰성의 첫 번째 관문이다. 해양 하드웨어는 통제된 환경과 실해역 사이의 격차가 크다는 점에서, 이 지표는 단순한 타임라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 파일럿 생산 시설 완공 및 노드 단가 공개 오리건주 포틀랜드 인근 파일럿 생산 시설 완공이 추진 중이다1. 시설 가동 시점과 노드당 생산 단가는 2027년 상업 배치 목표의 경제적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는 핵심 선행 지표다. 노드 단가가 클라우드 추론 원가와 경쟁 가능한 수준으로 내려오는지가 비즈니스 모델의 관건이다.
- 첫 상업 고객 계약 공개 2027년 상업 배치를 선언한 회사의 다음 신호는 계약이다1. 누가 판탈라사의 해상 추론 컴퓨팅을 최초로 도입하느냐 — 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러인지, AI 스타트업인지, 한화 계열 수요인지 — 가 비즈니스 모델의 실체와 타깃 시장을 드러낸다. 첫 계약의 규모와 성격이 이후 밸류에이션 논리의 기반이 된다.
오션-3가 북태평양에 뜨는 날, 데이터센터의 지도가 처음으로 육지 밖을 가리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