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택시의 문제는 오랫동안 충전기 숫자로만 이야기돼 왔다. 그러나 하루 종일 달려야 돈이 되는 차에게 진짜 병목은 충전기 앞에서 멈춰 있는 시간과, 차값을 끌어올리는 고가 배터리였다. 피트인은 배터리를 차에서 떼어내 구독으로 바꾸고, 방전된 배터리를 스테이션에서 10분 안에 갈아 끼우는 방식으로 이 둘을 한 번에 걷어냈다14. 그 회사를 2023년 분사시킨 현대자동차그룹이 제로원(ZER01NE)을 통해 전략적 투자자로 돌아왔고, 거기에 120억원이 붙었다1.
왜 '교체'였나 — 택시는 충전을 기다릴 수 없는 차다
전기차 전환의 문법은 오랫동안 승용차 기준으로 쓰였다. 밤새 집에서 충전하고 낮에 타는 차에게 충전 시간은 감수할 만한 불편이다. 상용차는 정반대다. 택시는 차가 서 있는 시간이 곧 매출 손실이고, 충전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받을 수 있었던 콜을 버리는 시간이다. 여기에 고가 배터리가 차량 가격에 그대로 얹히면서, 운수사가 전기 택시를 대량으로 들이는 결정은 늘 무거웠다1. 피트인이 짚은 지점이 여기다. 충전을 더 빠르게 만드는 대신, 충전 자체를 차 밖으로 빼냈다.
구조는 두 겹이다. 첫째, 국토교통부의 '전기차 배터리 소유권 분리' 실증특례를 바탕으로 차량과 배터리의 소유권을 갈랐다1. 운수사는 차만 사고 배터리는 구독한다. 둘째, 방전된 배터리는 스테이션에서 완충된 배터리로 즉시 교체한다1. 입차부터 출차까지 10분 이내다14. 운수사 입장에서는 고가 배터리를 사지 않아도 되고 충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서로 다른 두 부담이 하나의 계약으로 사라진다. 회사가 스스로를 충전 사업자가 아니라 '상용 전기차 에너지 플랫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1.
숫자는 아직 작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안양 1호 스테이션을 거점으로 2026년 8월 기준 법인택시 4개사 소속 37대가 배터리 교체형 구독을 쓰고 있고, 개인택시 중심의 멤버십 충전 이용 차량은 318대다1. 배터리 교체는 주 264건, 충전과 교체를 합친 누적 건수는 4,805건, 월 평균 충전량은 166.94MWh다14. 스테이션 한 곳에서 나온 수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회사가 투자자에게 판 것은 규모가 아니라 모델이 실제 운수사 현장에서 돌아간다는 증거다.
투자자 구성이 그 증거를 어떻게 읽었는지 보여준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제로원이 전략적 투자자(SI)로 들어왔고, 미국 실리콘밸리 기반 노틸러스인베스트먼트와 신용보증기금,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이 참여했다1. 2023년 현대자동차에서 분사한 뒤 시드를 포함한 누적 투자 유치액은 이번 라운드가 마무리되면 173억원이 된다1. 모기업이 분사시킨 회사에 3년 만에 전략적 투자자로 복귀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모델이 그룹의 상용 전기차 그림 안에서 자리를 얻었다는 신호로 읽힌다.
전통 전기택시 운영과 무엇이 다른가 — 다섯 줄 비교
피트인이 바꾼 것을 운수사의 하루로 옮겨 보면 다섯 줄로 정리된다. 왼쪽은 충전기를 세우고 배터리가 달린 차를 사는 방식이고, 오른쪽은 스테이션을 세우고 배터리를 빌려주는 방식이다.
| 영역 | 전통 전기택시 운영 | 피트인 연결 운수사 |
|---|---|---|
| 배터리 소유 | 차량 가격에 포함, 운수사가 일괄 구매 | 차량과 분리 · 배터리만 구독1 |
| 에너지 보충 | 충전기 앞에서 대기 | 스테이션 입차→출차 10분 이내 교체14 |
| 초기 비용 | 고가 배터리가 얹힌 차량 구매 | 배터리 구매 부담 제거, 구독료로 분산1 |
| 스테이션의 역할 | 전력을 소비하는 충전 거점 | 전력망과 양방향 연결되는 S2G 분산에너지 자원1 |
| 확장 단위 | 충전기 대수 | 스테이션 단위 · 인천 2호는 일 200대 대응4 |
표의 핵심은 넷째 줄이다. 충전기는 아무리 늘려도 전력을 쓰는 쪽에 머문다. 반면 완충된 배터리가 상시 대기하는 교환 스테이션은, 교체 수요가 비는 시간에 전력망 쪽에서 보면 저장 장치가 된다. 피트인이 이번 라운드 자금을 배터리 교체 서비스(BSS)를 넘어 '분산에너지 플랫폼'으로의 고도화에 쓰겠다고 밝힌 배경이다1.
규제에서 그리드까지 — 세 단계로 쌓은 구조
- 규제 특례로 소유권을 갈랐다 배터리 구독은 기술보다 법이 먼저다. 차량과 배터리가 한 몸으로 등록되는 제도 아래서는 배터리만 따로 빌려줄 수 없다. 피트인은 국토교통부 '전기차 배터리 소유권 분리' 실증특례를 바탕으로 이 전제를 깼고, 운수사가 배터리만 구독하는 계약 구조를 핵심 사업으로 세웠다1. 같은 모델을 복제하려는 쪽은 같은 규제 문턱을 다시 넘어야 한다.
- 안양 1호에서 운영 데이터를 쌓았다 법인택시 4개사 37대의 구독과 개인택시 318대의 멤버십 충전이 한 스테이션에서 돌아간다1. 주 264건의 교체, 누적 4,805건, 월 평균 166.94MWh의 충전량은 교체 주기와 피크 시간대 수요를 읽을 수 있는 원천 데이터다14. 공식 파트너 38개 기관에 현대자동차·기아·현대글로비스와 함께 신한EZ손해보험이 들어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4. 소유권이 갈린 배터리에는 보험과 금융의 설계가 따라붙어야 하고, 그 레이어를 이미 파트너로 묶어 두었다는 뜻이다.
- 스테이션을 전력망에 연결한다 다음 단계가 S2G(Station-to-Grid)다.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과 전력망을 양방향으로 연결하는 기술 고도화에, 향후 3년간 정부지원금 30억원을 포함해 총 40억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투입한다1. 재원은 중소벤처기업부 스케일업 TIPS 특화형 과제와, 금융위원회 등이 추진하고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소관하는 제조·모빌리티 분야 '혁신 프리미어 1000' 선정에서 나왔다13. 민간 120억원과 정부 40억원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The Bet — 왜 제로원은 분사시킨 회사에 다시 들어왔나
표면의 베팅은 배터리 교체 택시 사업이다. 그러나 법인택시 37대로는 설명되지 않는 금액이, 스테이션이 택시 인프라가 아니라 분산 에너지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가설로는 설명된다1. 스테이션에는 언제나 완충된 배터리가 대기하고, 교체 수요가 비는 시간 그 배터리 풀은 전력망 입장에서 저장 자원이다. S2G는 스테이션을 전력 소비처에서 양방향 자원으로 바꾸는 작업이고, 40억원의 R&D가 정확히 여기에 꽂힌다1. 현대자동차그룹 입장에서 보면 이 회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 준다. 자사 상용 전기차가 운수사에 더 가볍게 팔리도록 배터리 비용을 떼어내는 채널이자, 그룹 밖에서 실험하기 좋은 에너지 사업의 창구다. 실리콘밸리 기반 노틸러스인베스트먼트가 재무 투자자로 함께 들어온 것은, 이 가설이 국내 택시 시장에 갇힌 이야기가 아니라고 외부에서도 판단했다는 뜻으로 읽힌다1. 리스크는 분명하다. 소유권 분리는 실증특례 위에 서 있고, S2G는 아직 R&D 단계다. 규제가 항구화되지 않거나 전력 거래 수익이 손익에 나타나지 않으면, 이 회사는 스테이션 두 곳을 가진 충전 사업자로 남는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 인천 2호 스테이션의 준공과 가동률 인천 2호 스테이션은 착공에 들어갔고 2027년 2월 준공이 목표다. 설계 기준은 배터리 교체 일 200대다4. 안양 1호의 구독 37대, 멤버십 318대와 견주면 규모의 단위가 달라진다1. 준공 시점이 지켜지는지, 그리고 준공 뒤 몇 달 안에 설계 용량의 얼마를 채우는지가 이 모델의 복제 가능성을 처음으로 숫자로 보여줄 것이다.
- 법인택시 구독 차량 수의 기울기 멤버십 충전 318대는 접점이고, 구독 37대가 본체다1. 배터리 구독은 운수사 단위 계약이므로, 4개사라는 거래처 수가 늘어나는지가 대수 자체보다 먼저 봐야 할 선행 지표다. 개인택시 멤버십이 법인 구독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공개되면 더 좋다. 현재까지 전환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 S2G 첫 실증과 전력 거래의 손익 반영 40억원 R&D의 첫 산출물이 언제, 어떤 형태로 나오는지다1. 스테이션의 배터리 풀을 전력망과 양방향으로 연결하는 실증이 현행 제도 안에서 가능한지, 그리고 그 거래가 매출로 잡히는지가 핵심이다. 이 지표가 움직이면 피트인의 비교 대상은 충전 사업자가 아니라 분산에너지 사업자로 바뀐다.
인천 2호가 일 200대를 받아내는 순간, 이 회사의 분류가 충전에서 에너지로 바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