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는 오랫동안 ‘무엇을 넣었나’로 싸웠다. 성분표가 곧 마케팅이었고, 농도가 차별화였다. 그런데 바이오 기술을 내세우는 브랜드가 늘면서 축이 옮겨갔고, 넣은 성분을 피부에 어떻게 전달하고 제품으로 구현하느냐가 새 경쟁축이 됐다1. 그 축에 약물전달시스템 개념을 들고 온 더마 브랜드 베이직스킨랩에, 정부가 2년간 최대 8억원을 걸고 검증에 들어갔다1.
왜 ‘전달’이었나 — 성분 경쟁이 끝난 자리에 남은 변수
더마 스킨케어 시장에서 성분은 이미 공용어가 됐다. 같은 원료를 누구나 구할 수 있고, 성분표는 검색 한 번이면 비교된다. 바이오 기술을 앞세우는 브랜드가 늘어날수록 ‘어떤 성분을 넣었는지’만으로는 차이를 만들기 어려워졌고, 그 성분을 피부에 어떻게 전달하고 제품으로 구현하는지가 새 경쟁축으로 떠올랐다1. 베이직스킨랩이 서 있는 자리가 정확히 여기다.
회사의 핵심 기술인 에포뎁스(EPODEPTH) 테크놀로지는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쓰이는 약물전달시스템(DDS)의 개념을 화장품에 접목한 자체 기술이다1. 의약 분야에서 DDS 는 유효성분을 원하는 부위에 전달하거나 방출을 조절하기 위해 쓰인다. 베이직스킨랩은 그 원리를 화장품의 성분과 제형 설계에 적용한다1. 성분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성분이 도달하는 경로를 설계하는 회사로 포지션을 잡은 셈이다.
문제는 이 포지션이 말로는 쉽고 증명은 어렵다는 점이다. 기술이 소비자의 선택으로 이어지려면 연구 성과를 제형과 사용성, 안전성, 유통 채널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1. 전달 효율이 높다는 주장은 실험실에서 끝나지 않고, 제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실제 기능성으로 나타나는지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번 TIPS 과제가 전달 효율·제형 안정성·기능성 개선이라는 세 지점에 초점을 맞춘 이유다1.
제품군의 방향도 같은 논리를 따른다. 에포드의 기존 라인업은 마스크팩과 클렌저 중심이었다1. 클렌저는 씻어내는 제품이고 마스크팩은 접촉 시간이 정해진 제품이라, 전달 기술의 차이가 소비자 체감으로 드러나기엔 한계가 있는 카테고리다. 반면 안티에이징은 유효성분이 피부에 얼마나 도달하고 머무는지가 곧 제품력으로 읽히는 영역이다. TIPS 과제의 신제품 2종을 안티에이징 특화로 잡은 것은1, 기술이 가장 잘 보이는 무대로 제품을 옮기는 선택이다.
그리고 이 기술을 팔 자리로 회사가 고른 곳이 약국이다. 약사의 큐레이션이 작동하는 약국은 제품의 기술적 특징과 사용 방법을 소비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 접점이다1. 온라인 셀프 구매 채널에서 ‘전달 기술’은 한 줄 카피로 끝나지만, 약국 카운터에서는 설명이 판매의 일부가 된다. 기술 브랜드가 설명이 필요한 채널을 택했다는 것은, 이 회사가 자기 차별점이 어디서 작동하는지 알고 있다는 신호다.
성분 브랜드 vs 전달 기술 브랜드 — 다섯 줄로 보는 차이
차이는 어디서 나는가. 표로 놓으면 다섯 줄이다. 왼쪽은 성분 목록과 유통 커버리지로 경쟁하는 전통 더마 브랜드의 일반적인 문법이고, 오른쪽은 베이직스킨랩이 공개한 사실만으로 구성한 현재 좌표다.
| 영역 | 전통 더마 스킨케어 | 베이직스킨랩 · 에포드 |
|---|---|---|
| 경쟁축 | 어떤 성분을 얼마나 넣었나 | 성분을 피부에 어떻게 전달하고 구현하나1 |
| 기술 원천 | 원료사 성분 조합 · 위탁 제형 | DDS 개념을 접목한 자체 기술 에포뎁스1 |
| 주력 제품군 | 카테고리 전방위 라인업 | 마스크팩·클렌저에서 안티에이징 2종으로 확장1 |
| 유통 접점 | 온라인 · 오프라인 셀프 구매 | 약사 큐레이션이 작동하는 약국 140여곳1 |
| R&D 재원 | 자체 매출 · 마케팅 예산 내 배분 | TIPS 24개월 최대 8억 + 자체 부담 25% 이상1 |
표에서 눈여겨볼 줄은 유통과 R&D 재원이다. 전달 기술은 설명이 필요하고, 설명은 채널을 고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술을 다음 단계로 밀어 올릴 돈을 마케팅 예산이 아니라 정부 연구개발비에서 끌어왔다는 점이, 이 회사가 스스로를 어떤 부류로 규정하는지 말해준다.
시드에서 TIPS 까지 — 세 단계로 쌓은 순서
브랜드 출시 이후 베이직스킨랩의 행보는 순서가 분명하다. 자본과 브랜드, 채널, 그리고 기술 자금이 차례로 붙었다. 각 단계가 다음 단계의 근거가 됐다는 점이 이 회사를 읽는 열쇠다.
- 시드와 브랜드를 같은 달에 놓았다 베이직스킨랩은 2025년 7월 더벤처스 등으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고, 같은 달 프리미엄 더마 스킨케어 브랜드 에포드(EPODE)를 출시했다1. 기술을 완성한 뒤 브랜드를 붙인 게 아니라, 자본과 브랜드를 동시에 시장에 내놓고 검증을 시작한 구조다. 초기 제품군은 마스크팩과 클렌저 중심이었다1.
- 약국이라는 설명형 채널을 열었다 2026년 4월 약국 채널에 진출했고, 3개월 만에 전국 140여곳에 입점했다1. 약국은 약사가 제품의 기술적 특징과 사용법을 설명할 수 있는 접점이다1. 전달 기술을 내세우는 브랜드에게 이 채널은 매출 통로이자, 기술 서사가 소비자에게 실제로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현장이었다.
- 정부 R&D 로 기술의 다음 단계를 샀다 2026년 8월 중소벤처기업부 TIPS R&D 과제에 최종 선정돼 24개월간 최대 8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확보했다1. 과제 목표는 에포뎁스의 전달 효율·제형 안정성·기능성 개선과 안티에이징 특화 신제품 2종 개발이다1. 마스크팩·클렌저 중심 제품군을 기능성 더마 스킨케어로 넓히는 재원이 붙은 것이다1.
The Bet — 정부의 8억 검증이 지금 의미 있는 이유
TIPS 선정 자체는 스타트업 뉴스에서 드문 소식이 아니다. 그러나 화장품, 그중에서도 더마 스킨케어 브랜드가 R&D 트랙에서 선정된 것은 다른 각도에서 읽어야 한다. 이 산업에서 정부 연구개발비는 흔한 재원이 아니고, 심사 문법은 소비재보다 기술기업에 가깝다.
TIPS 는 민간 투자사가 먼저 발굴해 투자하고 추천한 기술기업을 정부가 평가해 연구개발비를 연계하는 프로그램이다1. 즉 이번 선정은 민간 자본이 먼저 걸고, 정부가 뒤에서 기술을 한 번 더 심사한 결과다. 화장품은 통상 연구개발보다 마케팅이 앞서는 산업이다. 그 산업에서 ‘전달 기술’이라는 바이오 문법으로 정부 R&D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은, 에포뎁스가 카피가 아니라 연구개발 과제로 다룰 만한 기술이라는 외부 판정이다. 회사는 총연구비의 25% 이상을 자체 부담해야 하고1, 결과물은 안티에이징 신제품 2종이라는 구체적 형태로 24개월 안에 나와야 한다1. 베팅의 본질은 ‘더마 브랜드가 기술 회사로 분류될 수 있는가’다. 이 분류가 성립하면 약국 140여곳은 유통 실적이 아니라 기술 검증 채널로 읽히고, 다음 라운드의 밸류에이션 문법도 소비재가 아니라 바이오 쪽으로 옮겨간다. 성립하지 않으면, 에포드는 잘 만든 더마 브랜드 하나로 남는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 약국 입점 수의 다음 자릿수 3개월 만에 140여곳이라는 속도가 유지되는지가 첫 지표다1. 입점 수 자체보다, 약사의 설명이 붙는 채널에서 재주문이 이어지는지가 전달 기술 서사의 실제 소비자 반응을 보여준다. 재주문율과 매출 규모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 안티에이징 신제품 2종의 출시 시점과 데이터 TIPS 과제의 산출물은 에포뎁스를 고도화해 만든 안티에이징 특화 제품 2종이다1. 24개월 과제 안에서 어느 시점에 첫 제품이 나오고, 전달 효율·제형 안정성 개선을 어떤 데이터로 증명하는지가 ‘기술 회사’ 분류의 성패를 결정한다. 데이터 없는 출시는 다시 성분 경쟁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 자체 부담 25% 를 감당하는 재무 구조 TIPS 는 기업이 총연구비의 25% 이상을 부담하도록 한다1. 시드 투자와 약국 매출로 이 부담을 소화하는지, 아니면 후속 라운드가 필요한지가 드러날 것이다. 후속 투자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 경로가 약국 카운터를 넘어 안티에이징 2종의 데이터로 증명되는지가, 다음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