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을 원하는 중소기업은 오랫동안 바이어 명단을 샀다. 명단은 넘쳤지만 그중 누가 지금 살 것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국가별로 다른 영업을 감당할 해외영업팀을 둘 여력도 없었다12. 딥세일즈는 그 판단을 여러 AI 에이전트에 나눠 맡기고, 구매 의도가 높은 바이어만 먼저 골라 미팅까지 끌고 가겠다고 나섰다1. 거기에 중소벤처기업부가 킹슬리벤처스의 추천을 받아 3년간 최대 15억원의 R&D 검증을 붙였다1.
왜 '명단'이 아니라 '의도'였나 — 해외영업의 병목은 데이터가 아니라 판단이었다
해외 영업의 실패는 대개 바이어를 몰라서가 아니다. 명단은 이미 충분히 많다. 문제는 그 수많은 기업 가운데 지금 제품을 살 가능성이 있는 곳을 가려내고, 적절한 시점에 접촉하는 일이다1. 이 판단을 하려면 국가별로 다른 영업 전략을 세우고 답장을 추적하며 미팅을 조율할 사람이 필요한데, 별도의 해외영업팀을 두기 어려운 중소기업이 많다2. AI 전담 조직도, 자체 시스템을 만들 예산과 운영 인력도 없는 회사에 남은 현실적 선택지가 가입 후 바로 쓰는 SaaS 였다2.
딥세일즈가 판 자리는 정확히 그 병목이다. 회사가 개발 중인 핵심 기술은 잠재 바이어의 구매 의도를 판단하는 기술이다. AI 에이전트가 사업 확장이나 신규 거래처 탐색 같은 공개된 기업 활동 정보를 분석해, 구매를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우선 선별한다1. 이미 운영 중인 서비스 셀리(Selly) 는 수출할 제품 정보를 학습해 영업 전략을 세운 뒤, 해외 기업의 수출입 이력·조달 활동·채용공고 데이터를 분석해 실제 거래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추린다2. 회사가 자사 홈페이지에서 밝힌 모수는 6,000만 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 DB 와 177개국이다. 외부에서 검증된 수치는 아니지만, 이 회사가 '명단'이 아니라 '필터'를 팔고 있다는 방향만은 분명하다.
구조도 다르다. 하나의 AI 가 해외 영업 전 과정을 처리하는 대신, 여러 에이전트가 역할을 나눠 협업한다. 한 에이전트가 구매 가능성이 높은 바이어를 탐색하면 다른 에이전트가 해당 기업의 언어와 상황에 맞는 영업 이메일을 쓰고, 별도의 에이전트가 상대방의 반응을 분석해 후속 연락과 미팅 일정을 관리한다1. 그리고 모든 단계는 담당자가 내용을 확인하고 승인해야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도록 설계됐다2. 에이전트가 대신 파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언제 무슨 말을 걸지를 대신 판단하고 사람은 승인만 한다. 자동화의 범위를 여기까지로 그은 것이, 해외영업팀이 없는 회사가 이 제품을 도입할 수 있게 만든 설계다.
이 회사는 2021년 설립됐고, 한국과 미국에 법인을 두고 아시아·북미 지역을 대상으로 해외 판로 개척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1. 킹슬리벤처스의 황연우 심사역은 딥세일즈가 "초기 투자 이후 해외 바이어 데이터 사업에서 AI 영업 자동화로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고 설명한다1. 데이터를 팔던 회사가 판단을 파는 회사로 이동한 셈이다. 바이어 데이터를 먼저 쌓았기 때문에 그 위에 구매 의도 모델을 얹을 수 있었고, 모델이 생기자 이메일·후속·미팅까지 자동화할 근거가 생겼다. 순서가 반대였다면 성립하기 어려운 궤적이다. 올해 7월에는 금융위원회 등 14개 부처가 선정한 2026년 제2차 '혁신 프리미어 1000' 547개사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선정 기업은 2027년 말까지 정책금융기관의 맞춤형 우대와 부처별 지원사업 특전을 받는다3.
전통 해외영업 vs 딥세일즈 — 같은 바이어, 다른 순서
차이는 도구가 아니라 순서에 있다. 전통 방식은 명단을 확보한 뒤 위에서부터 접촉하고, 딥세일즈 방식은 먼저 '지금 살 기업'을 고른 뒤 접촉한다1. 이메일을 보내는 주체가 사람에서 에이전트로 바뀐 것보다, 보내는 대상의 순서가 바뀐 것이 이 제품의 본질이다. 아래 다섯 영역에서 전통 방식과 셀리가 각각 무엇을 사람에게 남기고 무엇을 에이전트에 넘겼는지를 비교했다.
| 업무 영역 | 전통 해외영업 | 딥세일즈 셀리 |
|---|---|---|
| 바이어 탐색 | 전시회·협회 명단·데이터 구매 뒤 위에서부터 접촉 | 글로벌 기업 DB 에서 구매 의도 신호로 먼저 필터12 |
| 우선순위 판단 | 담당자의 감과 명단 순서 | 사업 확장·신규 거래처 탐색·조달·채용 데이터로 '지금 살 기업' 선별12 |
| 첫 접촉 | 템플릿 이메일과 번역 외주 | 바이어 언어·상황별 맞춤 이메일을 에이전트가 작성1 |
| 후속·미팅 | 답장 추적과 일정 조율을 사람이 수동으로 | 반응 분석 뒤 관심도 높은 곳만 후속 연락·미팅 관리1 |
| 통제·책임 | 사람이 전 과정을 직접 수행 | 단계마다 담당자 승인, 클로징은 사람이 맡는다2 |
셀리는 어떻게 파는가 — 세 개의 에이전트, 하나의 승인 버튼
딥세일즈가 개발하는 기술은 하나의 AI 가 해외 영업 전 과정을 처리하는 대신 여러 에이전트가 역할을 나눠 협업하는 구조다1. 역할을 나눈 이유는 단순하다. 바이어를 고르는 판단, 언어를 맞추는 작문, 반응을 읽는 해석은 서로 다른 일이고, 하나가 틀렸을 때 어디서 틀렸는지를 사람이 승인 단계에서 잡아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2. 세 단계를 순서대로 보면 이 제품이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남겨 뒀는지가 드러난다.
- 탐색 에이전트가 의도를 읽는다 수출할 제품 정보를 AI 가 학습해 영업 전략을 세우고, 해외 기업의 수출입 이력·조달 활동·채용공고와 사업 확장·신규 거래처 탐색 같은 공개 활동을 분석해 구매 검토 가능성이 높은 기업부터 추린다12. 명단의 길이가 아니라 순서가 산출물이다.
- 아웃리치 에이전트가 언어를 맞춘다 선별된 바이어의 언어와 상황에 맞는 영업 이메일을 별도 에이전트가 작성한다1. 회사 홈페이지는 이 단계에서 번역과 수정에 쓰던 시간이 사라진다고 주장하며, 영업 1인당 주당 20시간 이상 절감을 내세운다. 자체 주장이지만, 다국어 동시 아웃리치가 이 제품의 판매 포인트라는 점은 분명하다.
- 후속 에이전트가 반응으로 배운다 답장 내용과 반응을 분석해 관심 수준을 판단하고, 구매 가능성이 높은 바이어를 중심으로 후속 연락과 미팅을 제안한다1. 이 반응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구매 의도 판단 모델이 고도화돼,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반복 연락하는 일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1. 각 단계는 담당자 승인 뒤에만 진행된다2.
The Bet — 정부는 왜 이 R&D 를 3년 검증하기로 했나
킹슬리벤처스의 황연우 심사역은 딥세일즈를 "해외 진출을 원하지만 영업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팀" 이라고 평가했다1. 추천 사유가 기술의 새로움이 아니라 수요의 명확함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정부와 투자사가 3년 동안 확인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딥테크 TIPS 는 정부가 직접 고르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민간 투자사가 먼저 돈을 넣은 팀을 추천하면 정부가 R&D 를 얹는 민간투자 주도형 구조다1. 그래서 이번 선정의 실체는 킹슬리벤처스의 두 번째 베팅에 가깝다. 초기 투자 이후 데이터 사업에서 AI 영업 자동화로 이동한 궤적, 그리고 해외 진출을 원하지만 영업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라는 분명한 수요가 그 근거다1. 진짜 베팅은 '구매 의도 판단 모델' 이 바이어 반응 데이터로 스스로 정확해지는 루프에 있다. 이메일을 보낼수록 누가 살지 더 잘 아는 회사가 되면, 그 정확도는 명단을 파는 회사가 복제할 수 없다1. 여기에 기존 데이터 서비스에서 확보하기 어려웠던 아시아 지역 기업 데이터를 회사가 직접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더해진다1. 기존 데이터 서비스가 비워 둔 아시아 바이어 시장을 한국 수출 기업의 워크플로우로 채우는 것, 15억원은 그 가설을 3년간 검증하는 비용이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TIPS 는 3년짜리 과제지만, 구매 의도 모델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첫 12개월 안에 신호가 나온다. 회사가 공개할 수 있는 지표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지표를 나눠서 본다.
- 응답률과 미팅 전환율 구매 의도 모델의 성패는 '가능성 낮은 기업에 대한 반복 연락' 이 실제로 줄었는지로 드러난다1. 현재 셀리의 응답률·미팅 전환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TIPS 과제 기간 중 이 수치가 나오는지가 첫 번째 관전 포인트다.
- 아시아 기업 데이터의 커버리지 회사는 기존 데이터 서비스에서 확보하기 어려웠던 아시아 지역 기업 데이터를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1. 국가·기업 수·갱신 주기가 공개되면, 이 회사의 해자가 데이터인지 워크플로우인지 가늠할 수 있다.
- 누적 연결 주문과 미국 법인의 비중 홈페이지 기준 고객 기업 109곳 이상, 누적 연결 주문 1,300억원 이상이라는 자체 수치가 R&D 기간 동안 얼마나 움직이는지, 그리고 한국·미국 두 법인 중 어디에서 매출이 자라는지가 다음 라운드의 논리를 결정한다1.
그 판단이 보낸 이메일만큼 정확해지는지가, 15억원이 3년간 확인할 다음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