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쓰는 배터리는 지상 배터리와 전혀 다른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발사 과정의 강한 진동과 충격, 궤도에 오른 뒤의 진공과 극심한 온도 변화를 한 팩이 수명 내내 견뎌야 하고, SAR(합성개구레이더) 위성은 거기에 고출력 요구까지 더해진다1. 이 좁고 까다로운 조건만을 업으로 삼는 회사는 국내에 많지 않았다. 경남 진주에 100억원 규모 우주용 배터리 제조시설을 짓기로 한 특수환경용 배터리 기업 일켐에, 이번엔 중소벤처기업부 TIPS 의 검증이 붙었다1.

셀 스크리닝·특수환경 배터리팩 →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 초기 투자 → 100억 우주용 배터리 공장 협약 → TIPS 로 SAR 위성 팩·BMS 고도화
TIPS 선정 중기부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최종 선정 · 운영사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1
100억 경남우주항공국가산단 우주용 배터리 제조시설 투자협약 · 경남도·진주시, 2026년 4월1
2트랙 생산 인프라 구축과 위성용 배터리 R&D 병행 · 경상국립대 윤석택 교수팀 위탁연구1

왜 'SAR 위성'이었나 —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위성이 가장 엄격한 시험장이다

배터리는 어디에 실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제품이 된다. 지상에서는 상온과 대기압, 고정된 설치 조건이 기본값이지만, 우주용 배터리는 발사 과정의 강한 진동과 충격을 먼저 통과하고, 궤도에 오른 뒤에는 진공 상태와 극심한 온도 변화를 견뎌야 한다1. 여기에 SAR(합성개구레이더) 위성은 레이더를 구동하기 위해 높은 전력을 요구하는 만큼, 안정적인 배터리팩과 이를 제어하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 특히 중요해진다1. 위성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부하를 가진 쪽을 일켐은 첫 과제로 골랐다.

일켐은 '특수환경용 배터리 전문기업' 으로 소개된다1.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가 이 회사에 초기 투자를 집행한 근거도 새로운 셀 화학이 아니라 셀 스크리닝과 배터리팩 기술, 그리고 우주항공 분야의 성장 가능성이었다1. 셀 스크리닝은 같은 규격으로 출하된 셀 사이의 개체 편차를 측정해 걸러내고, 특성이 맞는 셀만 골라 팩으로 묶는 공정이다. 지상에서는 그 편차가 사소한 성능 차이로 끝나지만, 교체가 불가능한 궤도 위에서는 팩 전체의 신뢰성 문제가 된다. 우주용 배터리에서 가장 비싼 것은 용량이 아니라 신뢰성이고, 일켐의 출발점은 정확히 그 지점에 있다.

이번 TIPS 과제의 핵심은 그 신뢰성을 SAR 위성 급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일켐은 발사 진동·충격과 궤도상 진공·온도 변화를 견디는 배터리팩과 BMS 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경상국립대학교 우주항공대학 항공우주공학부 윤석택 교수 연구팀이 위탁연구기관으로 참여한다1. 팩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고출력 부하를 제어하는 BMS 까지 과제 범위에 넣은 것은, 셀을 사 와서 조립하는 회사가 아니라 시스템을 책임지는 회사로 가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타이밍도 읽을 필요가 있다. 일켐은 지난 4월 경상남도·진주시와 경남우주항공국가산단 내 우주용 배터리 제조시설 구축을 위한 100억원 규모 투자협약을 먼저 체결했다1. 공장이 앉을 자리를 먼저 정하고, 그 공장에서 만들 제품의 기술 개발을 TIPS 로 뒤따르게 한 순서다. 생산 인프라 구축과 기술 고도화를 병행하는 구조이고, 정부 R&D 지원이 그 두 트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1.

범용 배터리와 무엇이 다른가 — 다섯 가지 경계

일켐이 파는 것은 더 큰 배터리가 아니라 더 좁은 조건이다. '고신뢰성' 이라는 말은 사양표의 숫자가 아니라, 한 번 실리면 손댈 수 없는 환경에서 끝까지 동작한다는 약속이다. 지상용 범용 배터리의 전제와 일켐이 TIPS 과제에서 겨누는 SAR 위성용 배터리 시스템의 전제를 다섯 영역으로 나눠 보면 그 차이가 선명해진다1.

영역지상용 범용 배터리일켐 · SAR 위성용 시스템
셀 선별양산 셀을 규격 그대로 사용셀 스크리닝으로 개체 편차를 걸러 팩 구성1
운용 환경상온·대기압·고정 설치발사 진동·충격, 궤도 진공, 극심한 온도 변화1
부하 특성완만한 충·방전레이더 구동용 고출력 부하 · 고신뢰성 BMS 제어1
검증 주체제조사 자체 시험중기부 TIPS R&D + 경상국립대 항공우주공학부 위탁연구1
생산 기반기존 양산 라인경남우주항공국가산단 전용 제조시설 · 100억원 협약1

표의 왼쪽은 어느 회사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어서 비어 있는 칸이다. 오른쪽은 그 필요가 생기는 순간 전부 채워져야 하는 칸이다. 일켐의 경쟁력은 이 다섯 칸을 한 회사가 동시에 채우려 한다는 데 있고, 리스크도 정확히 같은 곳에 있다. 다섯 칸 중 하나라도 비면 위성에 실리지 않는다.

일켐은 어떻게 쌓아 왔나 — 투자, 공장, 과제의 순서

딥테크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전형적인 함정은 기술은 있는데 만들 곳이 없거나, 공장은 지었는데 넣을 기술이 없는 것이다. 일켐의 최근 행보는 그 두 함정을 피하려는 순서로 읽힌다1.

  1. 기술로 민간 투자를 먼저 받았다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일켐의 셀 스크리닝과 배터리팩 기술, 우주항공 분야 성장 가능성을 근거로 초기 투자를 집행했다1. 이후 전담 심사역을 배치해 사업모델 고도화, 과제 기획, 발표평가 코칭까지 TIPS 신청 전 과정을 붙어서 지원했다1. 센터 입장에서는 투자금만 넣은 것이 아니라 선정 과정까지 같이 뛴 셈이다.
  2. 공장 자리를 지자체와 함께 정했다 2026년 4월, 일켐은 경상남도·진주시와 경남우주항공국가산단 내 우주용 배터리 제조시설 구축을 위한 100억원 규모 투자협약을 체결했다1. 우주용 배터리는 소량·고신뢰 제품이라 범용 라인에 끼워 넣기 어렵고, 전용 시설 자체가 진입장벽이 된다. 지자체가 우주항공 국가산단 안에 자리를 내준 순간, 일켐은 '배터리 스타트업'에서 '경남 우주산업의 부품사'로 분류가 바뀌었다.
  3. TIPS 로 기술의 눈높이를 SAR 급으로 올렸다 이번 선정으로 일켐은 정부 R&D 지원을 연계해 SAR 위성용 고신뢰성 배터리팩과 BMS 개발을 이어간다1. 경상국립대 윤석택 교수팀이 위탁연구로 붙고, 생산 인프라 구축과 기술 개발이 병행된다1. 공장이 완성될 때 그 안에 넣을 제품이 가장 어려운 사양으로 검증돼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셀 스크리닝과 배터리팩 기술, 그리고 우주항공 분야의 성장 가능성." —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가 밝힌 일켐 초기 투자 근거1

The Bet — 왜 정부 검증이 지금 의미 있나

TIPS 는 정부가 먼저 고르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민간 운영사가 먼저 투자한 팀에 정부 R&D 를 얹는 '민간투자 주도형' 구조다1. 일켐의 경우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가 투자하고, 심사역을 붙이고, 과제를 함께 기획한 뒤 중소벤처기업부가 최종 선정했다1. 민간의 돈과 정부의 R&D 가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는 것이, 이 뉴스가 단순 '선정 소식' 이상인 이유다. 여기에 지자체의 100억원 제조시설 협약과 지역 대학의 위탁연구까지 더하면, 투자·생산·연구·검증의 네 축이 경남이라는 한 지역 안에서 맞물린다1.

The Bet

우주용 배터리는 큰 시장이 아니라 좁은 시장이다. 여기서는 셀 가격이 아니라 검증 이력과 전용 생산 기반이 진입장벽이 된다. 일켐은 100억원 제조시설 협약으로 '만들 수 있다' 를, TIPS 과제로 '가장 까다로운 사양에서 검증받고 있다' 를 각각 확보하려 한다1. 베팅의 본질은 SAR 위성이라는 최고 난도 부하를 먼저 통과해, 이후 모든 특수환경 배터리 수요에서 기본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반대편 리스크도 분명하다. TIPS 과제의 규모와 기간, 일켐의 매출과 고객사, 실제 위성 탑재 레퍼런스는 모두 공개되지 않았다. 레퍼런스 없는 공장은 자산이 아니라 비용이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1. 경남우주항공국가산단 제조시설의 착공과 가동 4월 협약이 100억원 규모의 투자 의향에서 실제 집행으로 넘어가는지가 첫 관문이다1. 착공 시점, 자금 조달 구조, 초기 생산 품목이 공개되는 순간 일켐의 체급이 결정된다. 현재는 생산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는 단계로만 알려져 있다1.
  2. SAR 위성용 팩·BMS 의 환경시험 결과 발사 진동·충격, 진공, 온도 변화를 견디는지는 말이 아니라 시험 데이터로 증명된다1. 경상국립대 윤석택 교수팀과의 위탁연구에서 어떤 시험 조건과 결과가 외부에 공개되는지를 봐야 한다1.
  3. 첫 위성 탑재 레퍼런스와 후속 투자 공장과 과제가 있어도 실제 위성에 실리지 않으면 우주용 배터리라 부를 수 없다. 위성 제작사와의 공급 계약, 혹은 TIPS 이후 후속 라운드가 나오는지가 민간 자본의 재검증 신호다. 고객사와 수주 현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일켐은 배터리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극한 조건에서의 신뢰성' 을 파는 회사다.
그 신뢰성이 진주의 공장에서 궤도 위의 레이더까지 닿는지가, 다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