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계측 업계는 오랫동안 정밀도와 속도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원자현미경은 표면의 굴곡을 읽어내는 정밀도가 뛰어나지만, 탐침 하나로 웨이퍼를 하나하나 훑는 구조라 속도를 높이는 데 물리적 제약이 따랐다1. 그 제약의 뿌리인 레이저 광학계를 아예 덜어내겠다는 서울대 교원 창업 기업이 나왔고, 거기에 서울대학교기술지주·한국투자파트너스·아이디벤처스·기술보증기금이 붙었다12. 금액은 양측 합의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1. 이번 라운드에서 읽어야 할 것은 규모가 아니라 구성이다.
왜 ‘속도’였나 — 병목은 정밀도가 아니라 처리량이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이 10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 영역으로 접어들면서, 수율을 지키기 위한 계측의 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있다1. 3차원 구조가 적용된 최신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공정에서는 표면의 아주 미세한 결함 하나가 칩 전체의 불량으로 직결된다1. 결함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히 잡느냐가 곧 수율이다.
이 때문에 웨이퍼를 생산 라인 밖으로 빼내지 않고 공정이 진행되는 도중에 실시간으로 검사하는 나노 인라인 계측 시스템의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1. 인라인이라는 말에는 정밀도만이 아니라 라인의 속도에 맞춰 측정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정밀도 하나로 버티던 계측 장비에 두 번째 과목이 생긴 셈이다.
원자현미경은 이 두 번째 과목에 약하다. 기존 방식은 레이저를 탐침 뒤에 쏘고, 반사되어 돌아오는 빛의 궤적으로 표면의 굴곡을 읽는다. 그래서 레이저 발진기와 이를 정밀하게 받아낼 복잡한 광학 모듈이 반드시 한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1. 센서 헤드가 크다 보니 단일 팁 구조로만 운영되고, 넓은 웨이퍼 표면을 하나씩 스캔해야 하니 측정 속도를 올리는 데 한계가 생긴다1. 정밀도는 이미 충분하다. 막힌 곳은 성능이 아니라 구조다.
멀티스케일인스트루먼트는 이 구조를 손보지 않고 걷어내는 쪽을 택했다. 레이저 광학계를 배제하고 수정 진동자(QTF)의 공진 원리를 활용해 센서 헤드의 부피를 줄이고, 레이저 모듈을 덜어낸 자리에 다중 헤드를 배열해 측정 속도의 한계를 넘겠다는 것이 회사의 접근이다1. 속도를 튜닝으로 끌어올리는 대신, 속도를 막던 부품을 설계에서 지웠다. 스타트업투데이는 이번 투자를 기존 계측 장비의 고질적 한계였던 속도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원천 기술에 자금이 몰린 결과로 풀이했다1. 다만 헤드가 몇 개인지, 속도가 얼마나 빨라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무엇이 다른가 — 같은 원자현미경, 다른 설계도
비교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같은 원자현미경이지만 표면 굴곡을 읽는 방식이 다르다. 기존 방식은 빛으로 읽고, 멀티스케일인스트루먼트는 수정 진동자의 공진으로 읽는다1.
| 비교 축 | 기존 원자현미경 | 멀티스케일인스트루먼트 |
|---|---|---|
| 표면 검출 | 탐침 뒤에 레이저를 쏘고 반사광의 궤적으로 굴곡을 읽음1 | 수정 진동자(QTF)의 공진 원리 활용, 레이저 광학계 배제1 |
| 부품 구성 | 레이저 발진기와 정밀 수신 광학 모듈이 한 세트1 | 레이저 모듈을 덜어낸 구성1 |
| 센서 헤드 | 부피가 큼1 | 부피 축소1 |
| 팁 구조 | 단일 팁으로 웨이퍼를 하나하나 스캔1 | 다중 헤드 배열1 |
| 측정 속도 | 물리적 제약으로 속도 향상에 한계1 | 다중 헤드 계측으로 단축 (개선 폭 비공개)1 |
다섯 행은 따로 떨어진 항목이 아니라 하나의 인과 사슬이다. 광학계를 빼면 헤드가 작아지고, 헤드가 작아지면 한 장비에 여러 개를 얹을 수 있고, 여러 개를 얹으면 같은 면적을 나누어 훑을 수 있다. 구조상 그렇게 추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사슬의 마지막 고리, 즉 헤드가 늘어난 만큼 처리량이 실제로 늘어나는가다. 헤드 수도, 속도 개선 폭도 공개된 자료에는 없다.
어떻게 굴러가나 — 광학계를 빼고, 헤드를 늘리고, 라인으로 간다
회사가 그리는 경로는 세 단계로 압축된다. 앞의 두 단계는 설계의 문제이고, 마지막 하나는 증명의 문제다.
- 광학계를 뺀다 레이저 발진기와 수신 광학 모듈이 한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가 헤드를 키우는 원인이었다1. 회사는 이 세트를 수정 진동자의 공진 원리로 대체해 센서 헤드의 부피를 줄인다1. 여기까지는 설계의 문제다.
- 헤드를 늘린다 줄어든 자리에 헤드를 여러 개 배열하는 다중 헤드 계측으로 측정 속도의 한계를 푼다1. 단일 팁 구조가 만든 병목을 병렬화로 푸는 방식이며, 이 회사의 가치가 가장 크게 갈리는 단계다.
- 라인에 들어간다 회사는 이번 자금으로 시제품 제작과 상용화에 착수할 계획이다. 연구용 기기 출시 이후 실제 반도체 양산 라인에서의 실증이 남은 과제로 꼽힌다1. 여기서부터는 설계가 아니라 증명의 문제다.
왜 이 자금이 ‘속도’에 붙었나 — 투자자 구성이 말하는 것
멀티스케일인스트루먼트는 2023년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제원호 교수와 소속 연구실 출신 연구진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딥테크 교원 창업 기업이다1. 중소벤처기업부의 딥테크 팁스와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 대상 기업으로 잇따라 선정되어 정부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받았다1. 이번에는 서울대학교기술지주, 한국투자파트너스, 아이디벤처스, 기술보증기금 등이 참여했다12.
라운드 단계와 리드 투자자, 지분 구조는 공개되지 않았다. 확인되는 것은 구성뿐이다. 대학의 기술 지주사, 벤처캐피탈, 보증기관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 조합은 시장 매출을 검증하는 라운드라기보다 원천 기술의 사업화 가능성에 자본을 거는 라운드에 가깝다는 것이 편집부의 해석이다.
회사 홈페이지는 스스로를 ‘30년 가까운 R&D 기반의 원자현미경 전문 업체’로 소개한다3. 법인 설립은 2023년인데 R&D 이력은 30년에 가깝다는 간극이 있고, 누구의 어떤 연구가 그 이력을 이루는지는 공개된 자료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연구실에서 출발한 교원 창업이라는 사실1과 함께 읽으면, 회사가 내세우는 자산이 신생 법인의 속도가 아니라 연구실의 축적이라는 점은 읽힌다.
홈페이지는 2026년 SPIE Advanced Lithography + Patterning 발표와 Semicon Korea 2026 Startup Summit 참가 이력도 소개한다3. 기술을 업계 무대에 올려 공개 검증을 받으려는 행보로 읽힌다.
레이저 광학계를 지우면 헤드를 늘릴 수 있고, 헤드를 늘리면 원자현미경이 연구실의 정밀 장비에서 라인의 계측 장비로 올라선다. 이 베팅이 맞으면 속도는 더 이상 정밀도의 대가가 아니다. 틀리면 설계는 우아했지만 양산 라인이 받아주지 않은 기술로 남는다. 어느 쪽인지는 아직 실증되지 않았다. 스타트업투데이의 제목이 이미 그 지점을 짚는다. 속도의 한계는 깼으나 실제 공정 적용 검증이 남았다는 것이다1.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 시제품과 연구용 기기의 공개 시점 회사가 밝힌 자금 용처는 시제품 제작과 상용화 착수다1. 시제품이 언제, 어떤 사양으로 공개되는지가 첫 번째 확인 지점이다. 사양에 헤드 수와 측정 속도가 포함되는지도 함께 본다.
- 양산 라인 실증의 성사 여부 연구용 기기 이후 남은 과제는 실제 반도체 양산 라인에서의 실증이다1. 고객사가 이름을 밝히지 않더라도 실증 착수 사실이 공개되는지, SPIE 같은 업계 무대에서 후속 데이터가 나오는지3가 신호가 된다.
- 속도 수치와 후속 자금 조달 이번 투자 금액은 비공개다1. 다음 라운드에서 금액과 단계가 공개되고, 그 시점에 측정 속도 개선 폭이 수치로 함께 제시된다면 이번 베팅이 연구 단계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다음은 양산 라인이 이 헤드를 받아들이는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