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너지 탈탄소는 오랫동안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바꾸라'는 구호에 머물렀다. 장비는 검증됐지만, 도시가스가 닿지 않는 지역의 소상공인과 단독주택 앞에는 설치비라는 벽이 먼저 서 있었다. 그 벽을 10년 구독으로 우회한 회사가 나왔고12, 거기에 정부가 최대 8억원·2년의 R&D 검증을 붙였다1. 기후테크 팁스 운영사 소풍벤처스가 시드에 이어 추천까지 맡은 딜이다1.
왜 '구독'이었나 — 히트펌프의 병목은 기술이 아니라 첫 달 현금이었다
공기열 히트펌프는 기술적으로 이미 검증된 장비다. 문제는 순서다. 초기 설치 비용을 소비자가 한 번에 내야 하고, 그 부담을 가장 못 견디는 곳이 하필 히트펌프가 가장 필요한 곳이라는 점이다. 모닥불에너지가 타깃으로 잡은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의 소상공인·사회복지시설·단독주택은 난방비 부담은 크지만 설비 교체를 결정할 자본 여력은 가장 얇은 집단이다1. 장비를 팔겠다는 회사는 많았지만, 이 집단에게 첫 달 현금을 요구하지 않는 회사는 없었다.
모닥불에너지는 이 순서를 뒤집었다. 장비를 파는 대신 열을 판다. 국내 최초로 10년 히트펌프 구독서비스, HaaS(Heat as a Service)를 내놓고 초기 설치비 없이 월 구독으로 히트펌프를 쓰게 했다12. 첫 10년 계약은 2025년 말 익산의 한 주유소였다1. 화려한 레퍼런스가 아니라 도시가스가 닿지 않는 곳의 자영업자가 첫 고객이었다는 사실이, 이 회사가 어느 시장을 보고 있는지를 그대로 말해 준다.
구독 모델은 그러나 자본 집약적이다. 장비를 회사가 소유하고 10년에 걸쳐 회수하니 계약 한 건마다 자산이 대차대조표에 쌓인다. 구독 사업의 마진은 결국 두 숫자, 설치 단계의 설비 이용률과 운영 단계의 에너지 효율에서 나온다. 같은 히트펌프를 놓아도 용량을 과하게 잡으면 초기 자본이 새고, 운영을 제대로 못 하면 난방비 절감 약속이 깨진다. 이 두 숫자를 AI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이번 팁스 과제의 골자다1.
정부 검증이 지금 의미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26년 상반기 슈미트·소풍벤처스·쏠리드엑스로부터 7억원 시드를 받아 구독 계약을 시작한 회사에게1, 팁스 R&D 8억원은 장비를 더 사는 돈이 아니라 장비당 마진을 바꾸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돈이다. 기후테크 전문 팁스 운영사인 소풍벤처스가 시드에 이어 팁스 추천까지 맡았다는 것은1, 투자자가 이 회사의 병목을 자본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읽었다는 뜻이다. 서울대 출신 에너지 전문가들이 세운 이 팀은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의 넷제로 챌린지X에도 선정됐다1.
전통 히트펌프 설치 vs 모닥불에너지 HaaS — 무엇이 달라지나
히트펌프를 놓는 행위 자체는 같다. 달라지는 것은 누가 돈을 내고, 누가 용량을 정하고, 설치 뒤에 누가 데이터를 보는가다. 전통 방식에서는 이 셋이 모두 소비자와 시공사 사이에서 끝나고, 제조사도 판매사도 설치 이후의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모닥불에너지의 HaaS 는 이 셋을 모두 회사 쪽으로 가져온다1.
| 영역 | 전통 히트펌프 설치·운영 | 모닥불에너지 HaaS |
|---|---|---|
| 초기 비용 | 소비자가 설치비 일시 부담 | 초기 설치비 없이 10년 구독2 |
| 설비 용량 산정 | 시공사 경험에 의존, 여유분 과잉 설계 경향 | 적정 용량 자동 산정 알고리즘 (1차 연도)1 |
| 운영 데이터 | 설치 후 사실상 미수집 | 1분 단위 수집·분석 인프라1 |
| 운영 제어 | 사용자 수동 설정 | 효율·전기요금 동시 고려 AI 제어 (2차 연도)1 |
| 수익원 | 장비 판매 일회성 | 구독료 + DR·탄소배출권 거래 연계1 |
표의 마지막 행이 핵심이다. 장비 판매는 설치가 끝나면 관계도 끝난다. 구독은 10년간 회사가 장비를 소유하고 운영 데이터를 쥔다1. 전기요금을 고려한 제어1는 소비자에게는 난방비 절감이지만, 전력망 쪽에서 보면 피크 시간대 부하를 옮길 수 있는 유연성 자원이다. 그 데이터가 전력수요관리(DR)와 탄소배출권 거래로 이어지면 히트펌프 한 대는 난방 장비가 아니라 전력망에 응답하는 분산 자원이 된다. 한국전력공사가 모닥히트에 사장상을 줬다는 사실3은 이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8억원은 어디로 가나 — 2년 로드맵 3단계
팁스 과제는 2개 연도로 나뉜다. 1차 연도가 설치와 데이터, 2차 연도가 제어와 시장이다1. 순서가 중요하다. 데이터 없이 제어 알고리즘을 만들 수 없고, 제어 없이 DR 시장에 들어갈 수 없다.
- 설치를 계산한다 (1차 연도) 공기열 히트펌프의 적정 설비 용량을 자동으로 산정하는 설치 최적화 알고리즘을 만든다1. 과잉 설계를 줄이면 구독 한 건당 투입 자본이 줄고, 같은 시드 자금으로 더 많은 계약을 깔 수 있다. 구독 회사에게 이 알고리즘은 기술 과제이기 전에 자본 효율 과제다.
- 데이터를 쌓는다 (1차 연도) 운영 데이터를 1분 단위로 수집·분석하는 인프라를 구축한다1. 그 그릇이 히트펌프 자산관리 플랫폼 모닥히트다. 이 플랫폼은 2026 기후부 AX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611개 팀, 76대 1 경쟁률을 뚫고 최우수상(한국전력공사 사장상)을 받았다3. 한전이 상을 준 플랫폼이라는 점은 뒤에 나올 DR 연계의 복선이기도 하다.
- 운영을 제어하고 시장에 판다 (2차 연도) 에너지 효율과 전기요금을 함께 고려하는 운영 제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전력수요관리(DR)와 탄소배출권 거래 기능까지 연계한 HaaS 플랫폼을 완성한다1. 구독료 밖에서 두 번째 수익원이 열리는 지점이고, 히트펌프 회사가 에너지 플랫폼 회사로 이름을 바꾸는 지점이다.
The Bet — 정부가 산 것은 히트펌프가 아니라 열의 운영권이다
소풍벤처스와 중기부가 검증하기로 한 가설은 단순하다. 히트펌프 보급의 병목은 장비 성능이 아니라 설치 자본과 운영 노하우이고, 그 둘을 구독과 AI로 회사가 떠안으면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이라는 남은 시장이 열린다는 것이다1. 이 가설은 이미 개별 계약을 넘어 지자체 보급사업 단위로 시험대에 올랐다. 2026년 제주 생활 속 히트펌프 보급사업의 하반기 1,418가구를 대상으로 제주동부신협과 10년 구독 금융상품을 붙였고, 회사는 10년간 연 40~60%의 난방비 절감을 제시했다2. 10년 구독은 10년치 운영 데이터를 회사가 쥔다는 뜻이고, 그 데이터 위에서 DR과 탄소배출권이 돌아간다면 이 회사는 설비 회사가 아니라 분산 열자원 운영사가 된다. 리스크도 같은 자리에 있다. 10년 자산을 떠안을 금융 조달 구조, 그리고 AI 제어가 실제로 절감 수치를 만들어내는지는 아직 공개된 바 없다. 이 베팅은 그래서 아직 가설이고, 팁스 2년은 그 가설을 숫자로 바꾸는 시간이다1.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 제주 1,418가구 중 실제 구독 전환율 보급사업 대상 가구가 전부 고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주동부신협 금융상품과 결합한 10년 구독2이 몇 가구의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지가 HaaS 모델의 첫 대량 검증이다. 익산 주유소 한 건1과 가구 단위 수백 건은 전혀 다른 운영 난도다.
- 1차 연도 알고리즘의 설비 이용률 개선폭 적정 용량 자동 산정으로 과잉 설계를 얼마나 줄였는지1. 이 수치가 공개되면 구독 한 건당 자본 효율을 역산할 수 있다. 회사는 아직 이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 연계 지원 3억원의 용처와 다음 라운드 팁스 연계 지원 최대 3억원은 사업화·해외 마케팅용이다1. 이 돈이 어느 해외 시장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상반기 시드 7억원1 이후의 후속 라운드가 언제 어떤 조건으로 붙는지가 다음 신호다.
제주 1,418가구2가 그 운영권의 첫 대량 시험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