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은 오랫동안 전기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전력망에서 석탄이 밀려나는 동안에도 공장 안에서 증기를 끓이고 원료를 달구는 열은 여전히 화석연료 보일러의 몫으로 남았다1. 그 열을 원자로에서 직접 뽑아 공급하겠다는 회사, 알엑스가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열공급 SMR RX-50을 설계하고 있다1. 거기에 KDB산업은행·스마일게이트·키움이 새로 들어온 100억원이 붙었다13.
왜 '열'이었나 — 전력망 바깥에 남은 탈탄소의 사각지대
탈탄소 논의의 중심은 늘 전력이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전력망에서 석탄을 밀어내는 사이, 공장 안에서 증기를 만들고 원료를 가열하는 열은 그 논의의 바깥에 있었다. 알엑스가 겨냥하는 지점이 정확히 여기다. 전력 생산에 초점을 맞춘 기존 원전과 달리, 산업 공정에 필요한 열을 원자로에서 직접 뽑아 공급하는 SMR 이다1. 산업 현장의 화석연료 기반 열원을 대체하는 것이 회사가 밝힌 목표다1.
회사는 이 설계를 혼자 하지 않는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경수형 열공급 SMR RX-50을 공동 개발하고 있고1, 핵심 연구 인력은 그 연구원의 SMR 설계부서 출신이 주축이다4. 원자로 설계라는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영역을, 국책연구기관의 DNA 를 들고 스타트업의 속도로 치고 들어가는 구조다.
노형의 선택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RX-50 은 경수형이다1. 국내 원전 산업이 가장 오래 다뤄 온 노형을 택했다는 건, 신기술의 성능 리스크보다 인허가와 공급망의 익숙함을 우선한 선택으로 읽힌다. 열공급이라는 새로운 용도를 검증된 기술 위에 얹는 쪽이, 새 노형과 새 용도를 동시에 증명하는 것보다 빠르다는 판단이다.
자금의 궤적도 그 구조를 따라간다. 2024년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시드4, 2026년 1월 Pre-A, 그리고 이번 10월 Pre-A Bridge 100억원1. 신규 투자자로 KDB산업은행·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키움인베스트먼트가 들어왔고, 기존 투자사 컴퍼니케이파트너스가 추가 출자했다12. 누적 239억원이다14. 가동 중인 원자로가 없는 설계 단계의 회사에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VC 가 같은 라운드에 앉았다.
중요한 건 이 100억이 가진 '자격증' 의 성격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딥테크 챌린지 프로젝트(DCP)는 2단계 진입에 30억원 이상의 후속 투자 유치를 요구한다1. 알엑스는 1단계에서 RX-50 개념설계를 끝냈고1, 이번 라운드로 그 요건을 세 배 넘게 채웠다. 민간 자본이 먼저 베팅해야 정부 R&D 의 다음 문이 열리는 설계에서, 이 라운드는 돈이자 통행증이다.
전력 원전 vs 열공급 SMR — 같은 원자로, 다른 고객
기술의 뿌리는 같다. RX-50 도 경수형 원자로다1. 달라지는 건 원자로가 만든 에너지를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넘기느냐다. 전력 원전은 터빈을 돌려 전력망에 전기를 판다. 알엑스는 열을 그대로 산업 공정에 넘긴다1. 고객이 전력회사에서 공장으로 바뀌면, 경쟁 상대도 다른 원전이 아니라 공장 안의 화석연료 보일러가 된다.
| 영역 | 전력 원전 · 화석연료 보일러 | 알엑스 RX-50 |
|---|---|---|
| 1차 산출물 | 전력 (전력망으로 송전) | 공정열 (산업 현장에 직접 공급)1 |
| 산업 현장의 열원 | 화석연료 보일러·가열로 | 경수형 SMR 의 원자로 열1 |
| 탄소 | 연소 과정에서 직접 배출 | 화석연료 사용·탄소 배출 저감이 설계 목표1 |
| 개발 주체 | 공기업·대형 플랜트사 중심의 장주기 사업 | 스타트업 + 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1 |
| 검증·자금 경로 | 정부 예산·공기업 투자 | VC 라운드 + DCP 단계별 평가 (2단계 요건 30억)1 |
표의 마지막 두 행이 이 회사의 실제 차별점이다. 열공급 SMR 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알엑스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과 컨소시엄을 맺고, 정부 딥테크 사업의 단계별 관문을 민간 투자 유치로 통과하는 경로는 복제하기 어렵다1. '스타트업이 원자로를 설계한다' 는 문장이 성립하려면 이 두 행이 먼저 채워져야 한다.
알엑스는 어떻게 쌓였나 — 사람, 설계, 통행증
이 회사의 2년은 세 단계로 요약된다. 사람을 모으고, 설계를 끝내고, 다음 단계로 갈 자격을 샀다.
- 설계 인력으로 출발 핵심 연구 인력이 한국원자력연구원 SMR 설계부서 출신이다4. 2024년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시드가 첫 외부 자본이었다4. 원자로 설계는 사람을 모으는 데서 시작하는 사업이고, 알엑스는 그 사람을 국책연구기관에서 데려왔다.
- DCP 1단계에서 개념설계 완료 '경수형 열공급 SMR 개발을 통한 차세대 탈탄소 산업열 에너지 생태계 구축' 을 과제로 1단계를 수행하며 RX-50 개념설계를 마쳤다1. 한국원자력연구원과의 컨소시엄이 이 단계의 틀이다1.
- 후속 투자로 통행증 확보 2026년 1월 Pre-A 에 이어 10월에 100억원 브리지를 닫았다1. DCP 2단계 진입 요건인 30억원 이상 후속 투자를 충족했고, 2단계 평가를 통과하면 본격 연구개발 단계로 들어간다12.
The Bet — 산업은행은 무엇을 샀나
이번 라운드의 투자자 구성을 다시 보자. 정책금융기관 하나, 민간 VC 둘, 그리고 기존 투자자의 추가 출자1. 성격이 다른 자본이 한 라운드에 모였다는 건, 각자 다른 이유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리드 투자자와 밸류에이션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라운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KDB산업은행이다1. 정책금융이 설계 단계의 원자로 스타트업에 들어왔다는 건, 열공급 SMR 을 민간 벤처의 실험이 아니라 산업 탈탄소 인프라의 후보로 읽었다는 뜻이다. 스마일게이트와 키움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건 그 다음 논리다. 원자력연구원의 설계 DNA 를 가진 팀이, 정부 딥테크 사업의 단계별 검증을 통과하며, 전력이 아닌 '열' 이라는 비어 있는 고객군을 먼저 점유한다. 리스크는 분명하다. 개념설계와 가동 원자로 사이에는 인허가와 실증이라는 긴 터널이 있고, 그 비용과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산 것은 원자로가 아니라, 그 터널을 통과할 자격을 갖춘 팀과 통과했을 때 열리는 시장의 옵션이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 DCP 2단계 평가 통과 여부 요건은 채웠지만 평가는 아직이다1. 통과하면 본격 연구개발 단계로 진입한다1. 떨어지면 이번 100억의 사용처 자체가 다시 짜여야 한다.
- RX-50 의 다음 설계 단계 개념설계 완료가 현재 위치다1. 다음 설계 단계로의 이행과 규제기관과의 사전 접촉 여부가 '엔지니어링 기업' 에서 '원자로 공급사' 로 가는 분기점이다.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 첫 열 수요처의 이름 산업 공정열이 고객이라면, 결국 어느 공장이 이 열을 사겠다고 나서는지가 지표다1. 수요처와의 협력이나 실증 부지 발표가 나오는 순간, 다음 라운드의 성격도 R&D 자금에서 사업화 자금으로 바뀐다.
그 열을 처음 사겠다는 공장이 어디인지가, 다음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