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스튜디오는 오랫동안 게임을 만드는 시간보다 게임을 만들 준비를 하는 시간에 더 많은 공수를 써 왔다. 프로젝트 초기화, 서버 연동, 플랫폼별 빌드와 배포는 재미와 무관하지만 프로젝트마다 어김없이 반복된다. 설립 2년 차 개발·퍼블리싱 스튜디오 샌디플로어가 자사 게임을 만들며 모듈화해 둔 그 공통 기술에 AI를 얹어 자동화하겠다고 나섰다. 거기에 정부가 2년간 최대 8억원을 걸고 검증에 들어갔다1.

자체 게임 다작 → 공통 모듈 축적 → AI 개발·배포 자동화 (TIPS) → 연 3개 출시 체계
최대 8억 TIPS 2026 일반트랙 · 2년 연구개발 자금 · 라구나인베스트먼트 추천1
상위 1.2% 글로벌 게임 테스트 플랫폼 · 개발 중 작품의 전체 테스트작 대비 평가45
연 3개 자체 개발+퍼블리싱 통합 체계의 연간 최소 프로젝트 출시 목표5

왜 ‘개발 자동화’였나 — 게임 회사가 툴 회사의 과제를 받았다

TIPS 는 민간 투자사가 유망 기술창업기업을 발굴해 투자·보육하고, 정부가 연구개발과 사업화 자금을 연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2026년 일반트랙에 선정된 기업에는 2년간 최대 8억원의 연구개발 자금이 붙는다1. 샌디플로어를 추천한 곳은 라구나인베스트먼트다1. 라구나는 올해 8월 후속 라운드에 신규 투자사로 들어왔고, 같은 라운드에 시드 투자사였던 코나벤처파트너스가 후속으로 참여했다45. 투자 두 달 반 만에 TIPS 추천이 나왔다는 사실은, 이 과제가 투자 논리의 부록이 아니라 본문이었다는 뜻이다.

시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 3분기 국내 투자 시장의 헤드라인은 로보틱스였고, 바이오헬스 메가딜은 사라졌다2. 게임 개발사는 그 헤드라인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업종이다. 그런 분기에 민간 투자사가 자기 자본을 넣은 뒤 정부 연구개발 자금까지 연결했다면, 투자사가 산 것은 업종이 아니라 이 회사가 가진 특정한 기술 자산이다.

과제의 내용은 명확하다. 자체 게임 개발 프레임워크에 AI를 결합해 공통 기능 구현, 프로젝트 설정, 플랫폼별 빌드·배포를 자동화하고, 개발팀이 핵심 게임성과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게 한다는 것이다1. 흥미로운 대목은 생성이 아니라 검증 쪽에 있다. AI가 만든 코드가 기존 프로젝트의 구성 요소와 정상적으로 연동되는지 확인하고, 잘못 해석한 명령이나 프로젝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을 감지하는 절차를 마련하며, 오류가 나면 이전 상태로 복원하는 기능까지 과제 범위에 넣었다1. 코드를 뽑아내는 AI 는 흔하지만, 실제 출시 파이프라인에 넣어도 되는 AI 는 드물다. 샌디플로어가 짚은 지점이 정확히 여기다. 회사 스스로도 실제 제작 환경에서 쓸 수 있도록 안정성과 호환성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못 박았다1. 생성 속도가 아니라 되돌릴 수 있는 안전장치를 과제의 축으로 세운 셈이다.

기술 고도화는 Unity 기반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Unreal Engine 으로 적용을 넓히는 방안은 연구 단계로 남겨 뒀다1. 이 과제가 일반적인 개발 툴 스타트업의 과제와 다른 이유는 회사의 정체성에 있다. 샌디플로어는 PC·모바일 게임을 직접 개발하고 퍼블리싱하는 회사다1. 여러 게임을 만들며 초기화, 서버 연동, 빌드처럼 반복되는 기능을 모듈화해 프로젝트 간에 재사용해 왔고, 이번 과제는 그 기반 위에 AI를 얹어 자동화 범위를 넓히는 작업이다1. 팔기 위해 만드는 툴이 아니라 자기 공장을 돌리기 위해 만드는 툴이라는 점이, 이 과제의 성격을 규정한다. 요구사항을 가장 잘 아는 사용자가 개발자 자신이다.

전통 스튜디오 vs 샌디플로어 — 다섯 레이어에서 무엇이 달라지나

게임 제작의 작업량 가운데 재미와 직접 관계없는 영역이 어디인지 보면, 이 회사가 자동화하려는 지점이 선명해진다. 왼쪽 열은 소규모 스튜디오의 통상적인 작업 방식이고, 오른쪽 열은 샌디플로어가 과제와 투자 발표에서 명시한 목표다15.

작업 영역전통 소규모 스튜디오샌디플로어 (TIPS 과제 이후)
프로젝트 초기 설정프로젝트마다 손으로 다시 구성초기화·서버 연동·빌드 모듈을 재사용하고 AI 가 설정을 자동화1
공통 기능 구현개발자가 반복 코딩AI 생성 코드 + 기존 구성 요소와의 연동 검증1
플랫폼별 빌드·배포플랫폼마다 별도 대응플랫폼별 빌드·배포 자동화를 과제 목표로 명시1
오류·위험 대응사후 디버깅, 수동 복구위험 작업 사전 감지 + 이전 상태 복원 기능1
출시 리듬프로젝트 하나에 팀 전체가 장기간 매달림자체 개발+퍼블리싱 통합, 연 최소 3개 프로젝트 출시 목표5

오른쪽 열은 아직 계획이다. 차이는 실제 프로젝트에서 검증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회사도 이를 알고 있어, 과제 안에 실제 게임 프로젝트에서 활용성과 안정성을 검증한다는 항목을 따로 넣었다1. 안정성과 호환성 확보에 주력한다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1. 반복 작업과 플랫폼 대응 부담이 줄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비용이 낮아진다는 것이 회사가 내세운 논리다1. 소규모 팀에게 이 비용은 곧 출시 가능한 프로젝트의 수와 직결된다.

세 단계로 읽는 축적 — 다작, 신호, 자본

  1. 다작으로 모듈을 쌓았다 샌디플로어는 2024년 설립 직후 카카오벤처스와 코나벤처파트너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았다45. 이후 여러 게임을 직접 제작하면서 초기화, 서버 연동, 빌드처럼 매번 필요한 기능을 모듈화해 프로젝트 간에 재사용해 왔다1. TIPS 과제는 이 모듈 더미 위에 서 있다. 과제를 위해 새로 만드는 기반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던 기반에 AI 를 더하는 작업이라는 점이 실행 리스크를 낮춘다1.
  2. 시장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2024년 인디크래프트에서 국내 개발사 TOP 5 에 들었고, 2025년 지스타 인디어워즈에서는 ‘관람객이 뽑은 최고의 게임상’을 받았다45. 개발 중인 게임은 글로벌 게임 테스트 플랫폼에서 전체 테스트 작품 가운데 상위 1.2% 평가를 받았다45. 자체 제작작 펭퐁은 8월 발표 기준 2026년 8월 20일 스팀 출시를 예고했다45. 심사위원상이 아니라 관람객상이라는 점, 내부 평가가 아니라 외부 테스트 플랫폼의 상대 순위라는 점이 신호의 성격을 말해 준다.
  3. 자본과 정부 검증이 뒤따랐다 2026년 8월 코나벤처파트너스가 후속으로, 라구나인베스트먼트가 신규로 들어왔다.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45. 회사는 이 자금으로 기획·프로그래밍·아트·사업 전 분야 인력을 보강해 연간 최소 3개 프로젝트를 내놓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했다5. 그리고 두 달 반 뒤, 같은 라구나의 추천으로 TIPS 가 붙었다1. 인력 보강이 사람의 수를 늘리는 쪽이라면, TIPS 과제는 사람 한 명당 처리량을 늘리는 쪽이다. 두 축이 같은 목표를 향한다.
“소규모 팀이 게임의 핵심 재미를 빠르게 구현하고, 이용자 피드백을 반영하는 개발 방식을 지향한다.” — 샌디플로어, TIPS 선정 발표에서 밝힌 개발 원칙1

The Bet — 정부와 라구나가 사는 것은 게임이 아니다

투자사와 정부가 동시에 베팅할 때, 보통은 시장 규모나 매출 곡선이 근거가 된다. 샌디플로어의 경우 매출과 투자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45. 대신 공개된 것은 출시 목표와 자동화 과제의 범위다15. 숫자가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는 것은 리듬에 대한 약속이다. 인디크래프트 TOP 5, 지스타 관람객상, 테스트 플랫폼 상위 1.2% 는 모두 게임 한 편의 품질을 가리키는 신호다45. 이번 TIPS 는 그 품질을 반복 생산할 수 있느냐를 묻는다.

The Bet

베팅의 대상은 특정 게임의 흥행이 아니라 출시 리듬이다. 소규모 팀이 연 3개 프로젝트를 내놓으려면 재미 외의 모든 작업이 자동으로 돌아가야 하고, 샌디플로어는 그 자동화를 남의 툴이 아니라 자기 모듈 위에 쌓겠다고 했다15. AI 코드 생성 자체는 차별점이 아니다. 기존 프로젝트와의 연동 검증, 위험 작업 감지, 이전 상태 복원까지 묶은 ‘출시 파이프라인에 넣어도 되는 자동화’는 실제로 게임을 출시해 본 팀만 요구사항을 안다1. 라구나가 신규 투자 두 달 반 만에 TIPS 추천을 낸 것은 이 과제가 투자 논리의 핵심이었다는 신호다14. 리스크도 같은 곳에 있다. Unity 중심 기술은 Unity 생태계에 묶이고, 언리얼 확장은 아직 연구 단계다1. 자동화 기술을 외부에 팔 계획이 있는지, 매출 규모가 어느 수준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1. 펭퐁 이후의 출시 건수 연 최소 3개 프로젝트라는 목표는 회사가 스스로 내건 숫자다5. 펭퐁 다음 작품이 언제, 몇 개 나오는지가 자동화가 실제 리듬을 바꿨는지 보여 주는 가장 직접적인 지표다. 숫자가 1개에 머문다면 과제는 내부 효율화에 그친 것이고, 3개에 닿는다면 공장은 돌아간 것이다. 8월에 예고된 펭퐁의 스팀 출시가 실제로 이뤄졌는지, 이용자 피드백이 다음 프로젝트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같은 지표의 일부다45.
  2. 검증 계층의 작동 여부 AI 생성 코드의 연동 검증, 위험 작업 감지, 이전 상태 복원은 과제 범위에 명시된 기능이다1. 이것이 실제 프로젝트에서 사고 없이 돌아갔는지, 그리고 Unreal Engine 확장 연구가 착수됐는지가 기술 리스크를 가르는 선이다1. 자동화가 멈추면 출시 리듬도 멈춘다.
  3. 자동화의 외부화 이 기술이 내부 도구에 머무는지, 퍼블리싱 파트너나 외부 스튜디오로 넓어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외부화가 시작되면 샌디플로어의 티어는 게임 퍼블리셔에서 개발 인프라 회사로 한 단계 바뀐다. 반대로 내부에만 머문다면, 출시 건수가 유일한 성적표다. 어느 쪽이든 과제 2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에는 방향이 드러날 것이다1.
결국 샌디플로어는 게임 한 편이 아니라, 게임을 빨리 여러 편 찍어내는 공장을 판다.
그 공장이 첫 12개월에 몇 편을 내놓는지가, 다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