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트 산업은 오랫동안 설계를 '사람의 시간'으로 샀다. 화학·정유 공장과 발전소를 짓는 EPC 프로젝트에서 설계 단계는 규모에 따라 수년이 걸리고, 그 상당 부분이 엔지니어의 수작업으로 돌아간다1. 그런데 그 설계 프로그램을 갈아엎는 대신, 엔지니어가 쓰던 CAD 화면 위에 명령어 입력창 하나를 더해 AI 를 끼워 넣은 회사가 나왔다1. 거기에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포항공과대학 기술지주·베이스벤처스의 시드 머니가 붙었다1.

현장 엔지니어 75명 인터뷰 → CAD 위 AI 명령창 → 설계 문서 작성·수정·검토 자동화 → 조달·시공까지 확장
3곳 시드 투자사 ·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포항공과대학 기술지주·베이스벤처스, 금액 비공개1
75명 제품 개발 전 인터뷰한 국내외 현장 플랜트 엔지니어1
4곳 확보 고객사 · 복수 기업과 기술 검증(PoC) 진행 중1

왜 '플랜트 설계'였나 — 가장 느린 공정이 산업 전체의 속도를 정했다

설계·조달·시공을 한 사업자가 통째로 맡는 방식을 EPC 라 부른다1. 이 구조에서 설계는 맨 앞에 선 공정이다. 설계가 끝나야 자재를 주문할 수 있고, 자재가 와야 시공이 시작된다. 그래서 설계가 수년을 먹으면 조달과 시공도 그만큼 뒤로 밀린다. 김상윤 스냅스케일 대표는 이 지점을 “산업 전체의 속도를 결정하는 병목”이라고 불렀다1. 플랜트 한 기의 공기가 설계실의 손놀림에 묶여 있다는 뜻이다. 설계실이 하루 빨라지면 뒤의 모든 공정이 하루씩 당겨지는 구조라, 자동화의 지렛대가 가장 긴 곳이 바로 이 맨 앞 단계다.

자동화가 늦었던 이유는 소프트웨어가 없어서가 아니다. CAD 는 이미 모든 설계 엔지니어의 책상에 있다. 문제는 그 도구 위에서 설계 문서를 작성하고, 수정하고, 검토하는 반복 작업이 여전히 사람의 손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1. 그리고 수년짜리 프로젝트가 돌아가는 설계실에 “플랫폼을 바꾸라”는 제안은 들어가기 어렵다. 멈출 수 없는 작업 흐름 위에서 도구를 교체하는 비용이 자동화의 이득을 상회하기 때문이다. 스냅스케일의 선택은 도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도구에 입 하나를 달아 주는 것이었다. 개발 중인 오토플로(AutoFlow) 는 기존 CAD 화면에 명령어 입력창을 더하는 방식이라, 기존 프로그램을 바꾸지 않고 쓸 수 있다1.

두 번째 장벽은 데이터다. 플랜트 설계 문서는 발주처와 EPC 사업자가 가장 민감하게 다루는 자산에 속한다. 도면을 외부 서버로 보내야 하는 AI 도구는 이 시장에서 보안 검토 단계조차 통과하기 어렵다. 스냅스케일은 모든 데이터를 고객사 서버 안에서 처리한다고 밝혔다1. 이 시장에서 데이터 반출 금지는 기능이 아니라 입장권이다. 회사가 제품을 만들기 전 국내외 현장 엔지니어 75명을 인터뷰했다는 사실1은, 이 입장권의 조건을 현장에서 먼저 들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타이밍도 맞아 들어갔다. 2026년 들어 AI 투자금이 범용 모델에서 산업 인프라로 이동한다는 관측이 나왔고5, 3분기 국내 투자 집계에서는 바이오헬스 메가딜이 빠진 자리를 로보틱스 같은 산업 영역이 채웠다2. 범용 AI 가 아니라 특정 산업의 작업 흐름 안에 들어가는 AI 에 돈이 몰리는 국면이다. 스냅스케일의 시드는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찍혔다.

전통 플랜트 설계실 vs 스냅스케일 — 다섯 가지 차이

차이는 '무엇을 자동화하느냐'보다 '어디서 자동화하느냐'에 있다. 설계실의 도구와 데이터 경계를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이 다섯 행 전체를 관통한다.

영역전통 플랜트 설계실스냅스케일 오토플로
설계 도구기존 CAD 위에서 엔지니어 수작업기존 CAD 그대로, 명령어 입력창만 추가1
설계 문서 작성·수정·검토엔지니어가 직접 반복 처리, 규모에 따라 수년 소요1AI 가 대신 처리, 엔지니어는 지시와 검수1
도입 비용새 도구는 교체·재학습 부담, 진행 중 프로젝트에선 보류프로그램 교체 없이 바로 사용1
데이터 위치외부 서버 전송이 필요한 AI 도구는 보안 검토에서 막힘모든 데이터 고객사 서버 안에서 처리1
자동화 범위설계·조달·시공이 각각 분리된 수작업설계에서 시작해 조달·시공까지 확장 목표1

오토플로는 어떻게 들어가나 — 세 단계

  1. 현장에서 시작했다 스냅스케일은 코드를 쓰기 전에 국내외 현장 플랜트 엔지니어 75명을 인터뷰했다1. 설계실에서 어떤 문서가 반복되고, 어디서 수정이 쌓이고, 무엇 때문에 외부 도구를 들이지 못하는지를 먼저 들은 셈이다. 포스텍·서울대·고려대 출신 엔지니어가 만든 팀이라는 배경1은 이 인터뷰를 '번역'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해 아산나눔재단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예비창업 트랙 대상1은 그 문제 정의가 외부 심사에서도 통했다는 첫 기록이다.
  2. 도구 안으로 들어갔다 오토플로는 엔지니어가 쓰던 CAD 화면에 명령어 입력창을 더한다1. 대상은 설계 문서를 작성하고, 수정하고, 검토하는 작업이다1. 새 화면을 배우는 대신, 익숙한 화면에서 지시를 내리면 AI 가 처리한다. 교체가 아니라 부착이기 때문에 도입 결정의 무게가 가볍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 한가운데에서도 시험해 볼 수 있다.
  3. 경계 안에 머문다 데이터는 모두 고객사 서버 안에서 처리된다1. 이 조건으로 현재 고객사 4곳을 확보했고, 복수 기업과 기술 검증을 진행 중이다1. 타깃은 EPC 기업과 부품·자재 공급사, 공공기관이다1. 이번 투자금은 연구개발 인력을 늘리고 진행 중인 기술 검증을 정식 도입으로 전환하는 데 쓰인다1. 시드의 용처가 '시장 확장'이 아니라 '전환'이라는 점이 지금 이 회사의 단계를 정확히 말해 준다.
“규모에 따라 수년씩 걸리는 플랜트 설계는 산업 전체의 속도를 결정하는 병목이었다. 현장 엔지니어들이 매일 쓰는 도구 위에서 바로 작동하는 AI 로 이 문제를 풀겠다.” — 김상윤, 스냅스케일 대표1

The Bet — 왜 대학 기술지주 두 곳이 같은 시드 테이블에 앉았나

The Bet

이번 라운드의 투자사 구성은 금액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와 포항공과대학 기술지주는 대학 기반 기술지주이고, 여기에 베이스벤처스가 함께 들어왔다1. 창업팀은 포스텍·서울대·고려대 출신 엔지니어이고, 지난해 아산나눔재단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예비창업 트랙에서 대상을 받았다1. 즉 이 시드는 공학 도메인을 아는 팀이 기존 도구를 대체하지 않는 진입각으로 데이터 반출 없는 구조를 들고 들어가는 조합에 걸린 돈이다.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고, 리드 투자자도 명시되지 않았다1. 제품은 아직 '개발 중'이며, 고객사 4곳이 유료 전환 상태인지도 공개되지 않았다1. 그래서 이 베팅의 본질은 매출이 아니다. 시드는 제품이 아니라, 수년짜리 설계실에 끼어들 수 있는 각도에 건 돈이다. 그 각도가 맞다면 설계 다음에 조달, 그 다음에 시공이 같은 입력창으로 이어진다1. 틀리다면 CAD 위의 편리한 플러그인 하나로 남는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1. PoC 가 정식 도입으로 바뀌는 비율 회사가 밝힌 투자금의 용처가 바로 이것이다1. 고객사 4곳1이 열 곳이 되는지보다, 진행 중인 기술 검증 가운데 몇 건이 계약으로 넘어가는지가 먼저다. 플랜트 시장에서 PoC 는 길고 전환은 느리다. 전환 사례 한 건이 다음 라운드의 가장 강한 근거가 된다.
  2. 설계 바깥으로의 첫 발 스냅스케일은 설계를 넘어 조달과 시공까지 자동화하는 것을 목표로 밝혔다1. 설계 문서에서 자재 명세로, 자재 명세에서 발주로 이어지는 첫 기능이 언제 나오는지가 '설계 보조 도구'와 'EPC 운영 레이어'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타깃에 부품·자재 공급사가 포함된 것1은 이 확장을 처음부터 염두에 뒀다는 신호다.
  3. 다음 라운드의 숫자와 리드 이번 시드는 금액이 공개되지 않았다1. 다음 라운드에서 금액과 리드 투자자가 공개되는지, 그리고 그 리드가 대학 기술지주 바깥의 재무적 투자자인지가 시장이 이 회사를 어떤 티어로 읽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결국 스냅스케일은 새 CAD 가 아니라, CAD 위에 얹는 입력창 하나를 판다.
그 입력창이 설계실을 넘어 조달과 시공까지 내려가는지가, 다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