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용 혈액은 지금까지 헌혈자의 몸에서만 나왔다. 실험실에서 적혈구를 키우는 기술은 오래 연구됐지만, 환자에게 놓으려면 “매번 같은 세포에서, 같은 품질로” 만들 수 있다는 증명이 먼저 필요했다. 그 출발점인 마스터세포은행을 짓겠다고 나선 회사가 아트블러드다. 거기에 중소벤처기업부가 과제당 3년간 20억~30억원으로 몸집을 키운 스케일업 팁스로 연구개발 자금 20억원을 붙였고, 추천 운영사 에스벤처스가 후속 투자 연계를 맡는다1.

불멸화 적혈구 전구세포주 마스터세포은행(MCB) 구축 식약처·FDA 임상시험계획 신청 수혈·시약·치료용 적혈구 플랫폼
20억원 스케일업 팁스 연구개발 자금 · 추천 운영사 에스벤처스1
약 47억원 세포기반 인공혈액 기술개발 사업단 5년 지원 · 임상시험용 대량생산 공정 고도화1
40여 편 인공혈액 관련 SCI 논문 · 국내외 특허 30여 건 (회사 발표)1

왜 '대량생산'이 아니라 '기준 세포'였나 — 임상은 양보다 동일성을 먼저 묻는다

인공 적혈구 이야기는 대개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느냐”로 시작한다. 그러나 규제기관 앞에서 순서는 반대다. 실험실에서 적혈구를 생산하는 기술을 환자에게 적용하려면, 같은 특성의 세포를 일정한 품질로 반복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할 때마다 출발 세포의 특성이 달라지면 시험 결과를 서로 비교할 수 없고,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도 일관되게 관리할 수 없다1. 임상시험은 세포를 '얼마나' 만들었는지보다 '무엇에서' 만들었는지를 먼저 묻는다. 아트블러드가 이번 과제의 제목을 대량생산이 아니라 마스터세포은행에 둔 이유가 여기 있다. 양은 나중에 늘릴 수 있지만, 출발점이 흔들리면 그동안 쌓은 시험 결과가 서로 다른 세포의 결과가 되어 버린다.

마스터세포은행(Master Cell Bank, MCB)은 동일한 기원과 특성을 지닌 세포를 보관해 두고, 필요할 때 꺼내 생산에 쓰는 기준 저장 체계다. 하나의 검증된 세포은행에서 생산을 시작하면 제조 시점과 생산 규모가 달라져도 세포의 특성과 품질을 일정하게 관리할 수 있다1. 아트블러드는 정상 염색체를 지닌 만능공여형 적혈구 전구세포주를 기반으로 이 은행을 구축하고, 이후 세포의 증식능과 적혈구 분화능, 안전성에 관한 품질자료를 마련한다1. 논문 속 세포가 아니라, 규제기관이 읽을 수 있는 문서가 붙은 세포를 만드는 작업이다.

과제의 정식 이름은 길다. '인공 적혈구 상용화를 위한 불멸화 적혈구 전구세포주 마스터세포은행(MCB) 구축 및 임상 적용을 위한 품질 적격성 확보'1. 이름 안에 회사의 계산이 다 들어 있다. 임상시험용 인공 적혈구를 반복 생산할 수 있는 기준 세포를 확보하고, 그 세포의 품질을 규제기관에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든다. 이 자료가 식약처와 FDA에 임상시험계획을 신청하는 기반이 된다1. 즉 이번 20억원은 세포를 키우는 돈이 아니라, 세포를 '설명하는' 돈이다. 불멸화 세포주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 한 번 검증한 기원을 소진하지 않고 반복해서 꺼내 쓰겠다는 설계이기도 하다.

정부 검증이 지금 의미 있는 이유는 트랙의 성격 때문이다. 스케일업 팁스는 민간 투자사가 먼저 투자하고 추천한 기술기업에 정부 연구개발 자금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이다. 중기부는 2026년 신규 지원 과제를 300개로 늘리고, 과제별 지원 규모를 기존 12억원에서 3년간 20억~30억원으로 확대했다1. 아트블러드는 2022년 7월 일반 팁스, 2026년 3월 중기부 초격차 스타트업 프로젝트(DIPS)에 이어 이번 스케일업 팁스까지 이어지는 트랙을 밟고 있다1. 여기에 세포기반 인공혈액 기술개발 사업단이 5년간 약 47억원을 지원하는 임상시험용 적혈구 대량생산 공정 고도화 과제가 별도로 돌아간다1. 네 개의 공적 연구개발 트랙이 한 회사에 겹쳐 있고, 그 마지막 조각이 '기준 세포'다. 심사 테이블마다 다른 질문을 받았을 것이고, 이번 질문은 “규제기관에 보여 줄 수 있느냐”였다.

헌혈 혈액 vs 체외 생산 적혈구 — 무엇이 바뀌나

비교의 축은 '누가 더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다. 출발 세포가 어디서 오고, 그 세포를 규제기관에 어떻게 설명하느냐다. 헌혈 기반 체계와 아트블러드가 설계하는 체외 생산 체계를 다섯 개 영역에서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보인다.

영역헌혈 기반 수혈 혈액아트블러드 체외 생산 적혈구
공급원헌혈자 개인 · 공급량이 헌혈 참여에 종속불멸화 적혈구 전구세포주 한 기원에서 반복 생산1
출발 세포의 동일성공여자마다 다름 · 로트 간 비교 어려움검증된 MCB 하나에서 출발 · 제조 시점·규모가 달라도 특성 일정1
공여 적합성혈액형·공여자 조건 매칭 필요정상 염색체를 지닌 만능공여형 전구세포주 기반1
품질 증명 방식채혈 단위별 검사증식능·분화능·안전성 품질자료 → 식약처·FDA 임상시험계획 신청1
확장 축수혈 용도에 한정수혈용 외 시약용 적혈구 · 치료제·면역자극제 운반용 치료용 적혈구 플랫폼3

표의 왼쪽 열은 틀린 시스템이 아니다. 다만 출발 세포가 매번 다르다는 구조적 조건을 안고 있다. 아트블러드가 파는 것은 그 조건을 '하나의 은행'으로 바꾸는 일이다. 스케일업 팁스는 세포를 키우는 돈이 아니라, 그 은행이 규제 기준을 통과하는지에 댄 돈이다.

20억원이 사는 것 — MCB 에서 임상시험계획까지 세 단계

  1. 기준 세포를 확정한다 정상 염색체를 지닌 만능공여형 적혈구 전구세포주를 골라 마스터세포은행으로 만든다. 이후 모든 임상시험용 생산은 이 하나의 검증된 은행에서 출발한다1. 어느 세포주를 기준으로 삼느냐가 이후 모든 시험 결과의 비교 가능성을 결정한다. 여기서 잘못 고르면 뒤의 두 단계가 통째로 되돌아간다.
  2. 품질 적격성을 문서로 만든다 은행에 보관된 세포의 증식능, 적혈구 분화능, 안전성을 시험하고 품질자료로 정리한다1. 이 자료는 회사 내부용이 아니라 규제기관에 세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과제 이름에 '품질 적격성 확보'가 들어간 이유이고, 회사가 발표한 논문 40여 편이 규제 언어로 번역되는 구간이다1.
  3. 임상 진입과 공정을 맞물린다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식약처와 FDA에 임상시험계획을 신청한다1. 동시에 사업단 과제로 고도화 중인 임상시험용 적혈구 대량생산 공정이 이 기준 세포를 받아 돌아가야 한다1. 기준 세포와 공정이 따로 놀면 두 과제의 결과는 합쳐지지 않는다. 20억원짜리 과제와 47억원짜리 과제가 같은 세포를 가리켜야 한다.
“임상시험용 인공 적혈구를 반복 생산할 수 있는 기준 세포를 확보하고, 해당 세포의 품질을 규제기관에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든다.” — 아트블러드 스케일업 팁스 연구과제 목표1

The Bet — 논문 40편 뒤에 '규제 문서'가 붙느냐

The Bet

아트블러드가 파는 것은 적혈구 자체가 아니라 적혈구의 동일성 증명이다. 회사는 인공혈액 관련 SCI 논문 40여 편과 국내외 특허 30여 건을 발표 수치로 내세운다1. 그러나 정부가 20억원을 건 지점은 논문이 아니다. 창업자 백은정 대표는 한양대 의대 진단혈액학·수혈의학 전문의로 2022년 회사를 세웠다13. 수혈 현장에서 혈액의 품질과 규제를 다뤄 온 사람이 '규제기관이 읽을 수 있는 세포 서류'를 만들겠다고 나선 셈이다. 에스벤처스가 후속 투자 연계를 맡은 이유도 같은 곳에 있다. 임상시험계획 신청이 성립하는 순간, 회사의 가치 근거는 논문 편수에서 규제 문서로 옮겨간다. 수혈용 외에 시약용 적혈구, 치료제·면역자극제 운반용 치료용 적혈구 플랫폼까지 같은 기준 세포에서 갈라져 나온다면3, 은행 하나가 세 개의 사업을 받치는 구조가 된다. 리스크도 여기 있다. 품질자료가 규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기준 세포와 대량생산 공정이 맞물리지 않으면 네 개의 공적 트랙은 각각 따로 끝난다. 임상 진입 시점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1. 품질자료 3종의 완성도 증식능·분화능·안전성 자료가 규제 제출 형태로 정리되는지가 첫 지표다1. 스케일업 팁스가 3년 단위로 설계된 만큼1, 첫 해에 어느 항목까지 닫히는지가 속도의 척도다. 세 항목 중 안전성 자료가 가장 늦게 닫힐 가능성이 크지만, 회사는 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2. 식약처·FDA 신청의 순서와 시점 국내 먼저인지, 두 기관 동시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신청 자체가 공식화되는 순간이 이 회사의 첫 외부 검증이다1. 어느 기관이 먼저냐에 따라 후속 투자자의 계산도 달라진다.
  3. 에스벤처스 후속 투자의 실체 스케일업 팁스는 민간 투자 뒤에 정부 자금이 붙는 구조다1. 추천 운영사가 연계한다는 후속 투자가 금액과 시점을 갖고 나타나는지, 아니면 프로그램 문구로 남는지가 갈림길이다. 현재 금액·시점은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아트블러드는 적혈구가 아니라 동일성을 판다.
그 동일성이 규제기관 앞의 서류 한 묶음으로 바뀌는 순간이, 다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