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창업 생태계는 오랫동안 "보육은 지역에서, 돈은 서울에서" 구조로 굴러왔다. 혁신센터가 팀을 발굴하고 데모데이를 열어도, 첫 체크의 결정권은 수도권 VC 의 테이블에 있었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그 테이블을 춘천으로 옮기려 한다. 제이앤피메디파트너스와 공동 운용(Co-GP)하는 43억원 규모 '강원창경-제이앤피메디 춘천 바이오 육성 투자조합' 이 그 수단이고, 한국모태펀드·춘천시·하나증권이 출자자로 이름을 올렸다1.

강원권 발굴·보육 인프라 모태펀드 창업초기소형 선정 43억 Co-GP 조합 결성 춘천 바이오 초기기업 직접 투자
43억 조합 총액 · 모태펀드·제이앤피메디·춘천시·하나증권 출자1
10년 조합 존속기간 · 초기기업 성장 주기에 맞춘 시간 지평1
60%+ 업력 3년 이내 또는 연매출 20억 미만 창업기업 의무 투자 비중1

왜 '조합' 이었나 — 매칭 무대만으로는 첫 체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강원혁신센터의 최근 몇 달을 따라가 보면, 이 기관이 얼마나 많은 '무대' 를 만들어 왔는지가 드러난다. 강원 스타트업 17개사가 투자자와 직접 만나 성장 가능성을 점검받는 자리를 열었고2, 8월에는 LIPS 인베스터데이로 7개사의 투자 매칭을 지원했다3. 철원 축제를 관광 스타트업의 실험대로 바꿔 46팀을 검증했고4, 캐나다 진출을 지원할 스타트업 10곳도 선정했다5. 발굴·검증·해외 진출까지, 보육 파이프라인은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 무대의 끝에서 누가 체크를 쓰느냐였다. 매칭 행사는 투자자를 지역으로 부를 수는 있어도, 투자 결정 자체를 지역 안에 붙잡아 두지는 못한다. 팀은 춘천에서 발굴되고, 결정은 서울에서 내려지는 장면이 반복됐다. 보육 인프라를 가진 기관이 직접 GP 가 되는 순간, 발굴 비용과 투자 판단이 같은 테이블에 놓인다. 이번 조합은 강원혁신센터가 창업기획자로서 쌓아 온 강원권 창업기업 발굴·보육 인프라를 운용 자산으로 전환하는 장치다1.

조합 이름부터 그 구조를 드러낸다. '강원창경-제이앤피메디 춘천 바이오 육성 투자조합' 은 두 운용사의 이름을 나란히 붙였고, 발표문은 두 운용사가 각자의 강점을 결합해 조합을 운용한다고 정리했다1. 센터 쪽 강점은 창업기획자로서의 강원권 창업기업 발굴·보육 인프라로 명시됐다1. 제이앤피메디파트너스 쪽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조합의 표적이 바이오·헬스케어로 못 박혀 있다는 점에서 산업 쪽 판단을 맡을 것으로 읽는 게 자연스럽다1. 발굴은 센터가, 섹터 판단은 산업 파트너가 맡는 분업이 이름 안에 들어 있다.

결성 경로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 조합은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한국모태펀드의 2026년 1차 정시 출자사업 창업초기소형 분야에 선정돼 결성됐다1. 모태펀드 출자는 운용사의 투자 논리와 집행 역량을 정부 심사가 한 번 걸러냈다는 뜻이다. 여기에 지자체인 춘천시, 증권사인 하나증권, 사업회사인 제이앤피메디가 같은 LP 명단에 올랐다1. 공공·금융·산업 세 축의 자본이 하나의 비히클에 모인 셈이다. 각 LP 의 출자 비중은 공개되지 않았다.

규모는 솔직하게 봐야 한다. 43억원은 바이오 섹터에서 큰 돈이 아니다. 그러나 이 조합의 표적은 업력 3년 이내 또는 연매출 20억원 미만의 창업기업이다1. 시리즈 B 를 노리는 펀드가 아니라, 춘천에서 첫 기관 자본을 받아야 하는 팀의 첫 체크를 겨냥한 소형 초기 펀드다. 존속기간 10년은 그 첫 체크가 후속 라운드까지 버틸 시간을 확보한 설계다1. 작은 돈을 긴 시간에 걸쳐 가장 이른 단계에 꽂는다는 점에서, 이 조합은 규모보다 위치로 읽어야 한다.

기존 창업지원과 무엇이 다른가 — 다섯 가지 축

혁신센터의 전형적인 도구는 프로그램이다. 선정하고, 교육하고, 무대에 올리고, 투자자를 부른다. 돈이 스타트업에 들어가더라도 사업비 형태가 많고, 지분을 들고 회수까지 책임지는 구조는 아니다. 이번 조합은 그 문법을 다섯 지점에서 바꾼다.

영역기존 지역 창업지원 프로그램춘천 바이오 육성 투자조합
자본의 성격사업비·보조금 성격의 단발성 지원모태펀드·지자체·증권사·사업회사 출자 43억 지분 투자1
운용 주체프로그램 주관기관, 투자 결정은 외부 VC강원혁신센터·제이앤피메디파트너스 Co-GP 직접 운용1
의사결정 구조매칭 행사 후 투자자 개별 판단투자의사결정 심의기구·자문위원회 자체 운영1
시간 지평연 단위 사업 예산 주기존속기간 10년1
지역 의무권역 내 참여 자격 위주춘천 소재 50%·비수도권 20% 이상 의무, 요건 중복 인정1

오른쪽 열은 전부 결성총회에서 의결된 내용이다. 총회에서는 조합 규약과 사업계획, 투자의사결정 심의기구 및 자문위원회 운영방안이 승인됐고, 회계감사인과 수탁회사 선정도 함께 의결됐다1. 육동한 춘천시장, 이해정 강원혁신센터 대표이사, 이재현 제이앤피메디파트너스 부사장, 김동식 하나증권 본부장 등 20여 명이 참석해 펀드 운용계획 발표와 기자간담회까지 진행했다1. 지자체장이 결성총회에 직접 앉았다는 것은 춘천시가 이 조합을 예산 집행이 아니라 지역 산업 정책의 도구로 본다는 신호다.

가장 큰 차이는 시계다. 사업비는 소진되면 끝나지만 지분은 회수돼야 한다. 조합은 센터에 '회수' 라는 시계를 붙이고, 포트폴리오의 다음 라운드와 엑시트가 센터의 성과가 되게 만든다. 10년이라는 존속기간은 그 시계의 길이다1. 보육 성과를 참여 기업 수로 세던 기관이 이제 포트폴리오 가치로 평가받는 위치에 들어선 셈이다.

43억이 흐르는 경로 — 발굴에서 첫 체크까지 세 단계

조합의 주목적 투자 요건은 네 가지고, 서로 중복 인정된다1. 이 요건을 순서대로 놓으면 돈이 어디서 출발해 어디에 닿는지가 보인다.

  1. 파이프라인에서 고른다 조합은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등 스타트업 열풍 지원사업 참여기업에 20%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1. 센터가 이미 돌리고 있는 지원사업과 인베스터데이가 그대로 딜 소싱 채널이 된다는 뜻이다. 투자자와 만난 17개사, LIPS 매칭 7개사가 그 후보군의 일부다23. 발굴 단계에서 이미 검증을 거친 팀을 다시 심사하므로, 소싱 비용은 일반 VC 보다 낮게 시작한다.
  2. 심의기구가 거른다 결성총회에서 투자의사결정 심의기구와 자문위원회 운영방안이 승인됐고, 회계감사인과 수탁회사가 선정됐다1. 보육 기관이 GP 를 맡을 때 흔히 제기되는 '온정적 투자' 우려를 제도로 막는 장치다. 수탁회사를 따로 두는 것은 조합 자산의 보관을 운용사와 분리한다는 뜻이고, 회계감사인 선정은 집행 내역이 외부 검증을 받는다는 뜻이다1. 다만 심의기구의 구성원과 의결 기준, 두 Co-GP 사이의 역할 분담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빈칸이 어떻게 채워지느냐가 조합의 신뢰도를 결정한다.
  3. 초기기업에 60%, 춘천에 50% 를 꽂는다 업력 3년 이내 또는 연매출 20억원 미만 창업기업에 60% 이상, 춘천에 본점·지점·연구소·공장 중 하나를 둔 중소기업에 50% 이상, 서울·인천·경기 외 지역 중소기업에 20% 이상을 투자한다1. 하나의 투자 건이 여러 요건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어, 춘천 소재 초기 바이오 기업 한 곳이 네 가지 의무 비율을 한꺼번에 채우는 구조다1. 의무 비율은 제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조합이 어떤 기업을 찾아야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적어 둔 문장이다.
"춘천지역을 중심으로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의 유망 벤처기업과 창업자를 발굴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육성한다." —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제이앤피메디파트너스, 조합 결성 발표1

The Bet — 왜 모태펀드와 춘천시, 하나증권이 이 테이블에 앉았나

The Bet

이 조합의 베팅은 '지역 의무 비율이 제약이 아니라 독점 파이프라인' 이라는 가설이다. 수도권 VC 에게 춘천 소재 50% 조건은 채우기 어려운 숙제지만, 강원혁신센터에게는 이미 갖고 있는 발굴·보육 인프라 그 자체다1. 제이앤피메디는 LP 로 돈을 넣는 동시에 제이앤피메디파트너스로 운용에도 들어와 있다1. 출자자가 운용자이기도 한 구조는 바이오·헬스케어 도메인의 판단이 조합 밖이 아니라 안에 상주한다는 뜻이다. 춘천시의 LP 참여는 지자체 자금이 보조금이 아니라 지분으로 지역 기업에 들어가는 경로를 연다1. 하나증권의 참여는 초기 포트폴리오를 자본시장과 연결할 접점이 될 수 있지만, 구체적 역할은 공개되지 않았다. 43억원을 굳이 두 운용사가 나눠 맡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1. 발굴 채널과 섹터 판단을 한 조직이 모두 갖기 어려운 지방 초기 바이오에서, 두 강점을 한 조합에 묶는 것이 단독 운용보다 낮은 비용으로 딜을 통과시키는 길이다. 리스크도 분명하다. 43억원으로 10년을 버티는 소형 조합이 춘천 바이오 딜플로우의 깊이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지, 심의기구가 지역 논리보다 수익 논리를 우선할 수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1.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결성은 출발선이다. 조합이 실제로 춘천 바이오의 첫 체크가 되는지는 앞으로 열두 달의 집행에서 판가름 난다. 공개된 정보가 결성 구조에 머물러 있는 만큼, 아래 세 가지는 모두 아직 답이 없는 질문이다.

  1. 첫 투자 집행의 시점과 건당 규모 결성총회에서 펀드 운용계획이 발표됐지만1, 첫 투자 시점·건당 티켓·연간 집행 목표는 공개되지 않았다. 43억원을 몇 곳에 나누느냐가 이 조합이 '첫 체크 펀드' 인지 '소수 집중 펀드' 인지를 가른다1. 초기기업 60% 이상 조건을 감안하면 건당 규모는 작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집행 속도가 조합의 존재감을 좌우한다1.
  2. 춘천 50% 를 채우는 기업의 출처 주목적 비율은 중복 인정된다1. 춘천 소재 초기 바이오 기업이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을 채울 수 있는지, 아니면 비수도권 20% 조건으로 강원 밖 기업을 끌어와야 하는지가 춘천 딜플로우 깊이의 실측치다1. 철원 축제에서 검증받은 46팀처럼 센터의 파이프라인은 관광 등 다른 섹터에도 걸쳐 있어4, 바이오·헬스케어로 좁혔을 때 후보군이 얼마나 남는지가 관건이다.
  3. 후속 라운드 유입 소형 초기 조합의 성패는 포트폴리오가 다음 체크를 받느냐로 결정된다. 하나증권 등 금융 LP 가 후속 라운드에 관여하는지, 수도권 VC 가 춘천 포트폴리오에 들어오는지가 '보육에서 자본으로' 라는 이 조합의 논리를 시장이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신호다. 센터가 캐나다 진출 지원 스타트업 10곳을 선정한 것처럼5, 해외 진출 프로그램과 조합 포트폴리오가 겹치기 시작하면 이 조합은 지역 펀드를 넘어 글로벌 출구를 가진 초기 펀드로 읽히게 된다.
결국 강원혁신센터는 이제 '보육' 이 아니라 '첫 체크' 를 판다.
춘천에 꽂힌 43억이 춘천 밖의 다음 체크를 불러오는지가, 다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