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관세·규제 환경이 요동칠수록 수출입 기업의 통관 리스크는 커져 왔지만, 그 판단 업무는 오랫동안 전문가의 수작업에 묶여 있었다1. 규제 문서를 읽고, HS코드를 판정하고, 인허가 요건을 가리는 일은 사람의 경험이 곧 시스템이었다. 이 판단 과정 자체를 AI로 옮기겠다는 회사에, 정부가 3년간 최대 15억원을 걸고 검증에 들어갔다12. 서울대기술지주 추천으로 딥테크 TIPS에 최종 선정된 무역 레그테크, 에이셉익스프레스다13.
왜 '규제 판단'이었나 — 병목은 검색이 아니라 판단이다
무역 컴플라이언스 업무의 실체는 단순하지 않다. 국가마다 규제 문서가 다르고, 통관 절차가 다르고, 요구하는 인증이 다르다. 같은 제품이라도 어느 나라로 가느냐에 따라 HS코드 판정이 갈리고, 판정이 갈리면 관세율과 인허가 요건이 통째로 바뀐다1. 게다가 이 문서들은 계속 바뀐다. 글로벌 관세·규제 환경이 급변하면서 수출입 기업의 통관 리스크 부담은 커지고 있는데, 관련 업무는 여전히 전문가의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1.
기존 솔루션들이 멈춘 지점이 여기다. 규제 정보를 모아 보여주는 검색·조회 도구는 많았지만, 그 정보를 읽고 '이 제품은 이 코드, 이 요건'이라고 결론 내리는 일은 끝내 사람의 몫으로 남았다. 무역 컴플라이언스의 병목은 정보가 아니라 판단이다. 판단하는 전문가의 수는 늘지 않는데, 판단해야 할 규제의 양은 계속 늘어난다.
타이밍도 이 베팅의 일부다. 관세와 무역 규제가 안정적이던 시기에는 전문가 수작업이 느려도 버틸 만했다. 하지만 규제가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판단의 속도 자체가 리스크 관리 능력이 된다1. 규제가 바뀔 때마다 전문가의 재검토를 기다려야 하는 기업과, 바뀐 문서를 AI가 즉시 해석하는 기업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에이셉익스프레스가 겨냥하는 것은 바로 이 격차다.
이 회사의 출발점이 흥미로운 건 소프트웨어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글로벌 특수물류 사업을 직접 수행하며 무역 실무 데이터와 현장 노하우를 쌓았고, 그것을 기술의 토대로 삼았다1. 국가별 규제, 통관 절차, 인증 검토처럼 무역 과정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구조화해 온 끝에, 지난 4월 AI 기반 무역 컴플라이언스 서비스 ASAP C(Compliance AI)를 오픈했다1.
이번 딥테크 TIPS 선정 과제 '다국가 무역규제 자율판단 AI Agent'는 그 다음 단계다. 국가마다 다른 무역 규제 문서를 AI가 해석해 HS코드 판정과 인허가 요건을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 결과를 다시 자체 검증하는 자율판단 구조가 핵심이다12. 단순 정보 검색을 넘어 전문가의 판단 과정 자체를 AI로 구현하는 고난도 기술로 평가받았다1.
무엇이 달라지나 — 관세사의 책상 vs 자율판단 루프
전통적인 무역 컴플라이언스와 에이셉익스프레스가 만들려는 구조를 업무 단위로 겹쳐 보면, 이 회사가 어디를 대체하려는지가 선명해진다. 왼쪽은 사람의 경험에 쌓이는 구조, 오른쪽은 소프트웨어에 쌓이는 구조다.
| 업무 영역 | 전통 방식 | 에이셉익스프레스 |
|---|---|---|
| 규제 문서 해석 | 전문가가 국가별 원문을 직접 검토 | AI가 다국가 규제 문서를 해석 |
| HS코드 판정 | 관세사의 경험·선례에 의존 | AI가 판정하고 결과를 자체 검증 |
| 인허가 요건 확인 | 국가별 개별 조회·대행 의뢰 | 에이전트가 요건을 스스로 판단 |
| 지식의 축적 | 개인 노하우 — 이전·확장이 어려움 | 특수물류 실무 데이터로 구조화 |
| 확장 방식 | 전문가 수에 비례한 선형 확장 | 소프트웨어로 다국가 동시 확장 |
물론 이 오른쪽 컬럼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자율판단 에이전트는 이번 TIPS 과제로 개발이 진행되는 기술이고, 3년의 정부 R&D가 그 러닝웨이다1. 경쟁 환경도 만만치 않다. 물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AI 물류 자동화와 공급망 인텔리전스 고도화 경쟁이 치열하고, 최근 글로벌 통합 물류 플랫폼 테크타카가 알토스벤처스 등으로부터 180억 규모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1. 다만 에이셉익스프레스가 고른 자리는 물류 실행이 아니라 그 앞단의 '규제 판단'이다. 누구나 전문가 수준의 규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 — 회사가 공개적으로 내건 목표이고, 실행 물류보다 좁지만 더 깊은 우물이다1.
물류에서 레그테크까지 — 3단 축적 구조
- 현장에서 데이터를 캔다 글로벌 특수물류 사업을 직접 수행하며 실제 통관·규제 대응 데이터와 현장 노하우를 축적했다1. 레그테크의 원료가 되는 실무 데이터를 외부에서 사 오지 않고 자체 사업으로 만드는 구조라, 데이터의 밀도와 지속성이 다르다.
- 제품으로 굳힌다 그 데이터를 토대로 2026년 4월 AI 무역 컴플라이언스 서비스 ASAP C를 오픈했다1. 무역 과정에서 반복되는 규제 검토 문제를 서비스 형태로 구조화한 첫 결과물이자, 이번 TIPS 과제의 기술적 출발선이다.
- 판단까지 넘본다 딥테크 TIPS 과제로 ASAP C를 자율판단 에이전트로 고도화한다. 해석, 판정, 자체 검증으로 이어지는 루프가 완성되면 사람의 개입 없이 규제 판단이 도는 구조가 된다12.
The Bet — 왜 정부 검증이 지금 의미 있나
규제 판단은 오답의 비용이 큰 영역이다. HS코드 하나가 틀리면 관세와 통관 일정이 통째로 흔들리고, 그래서 이 시장은 '싼 AI'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판단'에 돈을 낸다. 딥테크 TIPS의 3년·최대 15억원은 매출 검증이 아니라 기술 난이도 검증이다. 서울대기술지주가 추천하고 중소벤처기업부가 최종 선정하는 절차를 통과했다는 건, 전문가의 판단 과정을 AI로 구현하겠다는 접근이 연구 과제 수준의 난이도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13. 여기에 특수물류를 직접 뛰며 쌓은 실무 데이터는 API로 사 올 수 없는 자산이다. 판단의 신뢰가 곧 진입장벽이 되는 시장에서, 3년의 정부 R&D는 그 신뢰를 만들 시간을 사 준 것이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 프리 시리즈A 클로징 회사는 TIPS 선정을 발판으로 프리 시리즈A 라운드를 진행 중이다1. 라운드의 규모와 투자자 구성이, 정부가 인정한 기술 서사가 민간 자본에도 팔리는지를 보여줄 첫 지표다.
- 자율판단의 성능 공개 HS코드 판정 정확도나 자체 검증이 잡아내는 오류율 같은 정량 지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 숫자가 공개되고 전문가 대비 수준이 입증되는 순간이 상용화의 분기점이다.
- 다국가 커버리지 과제 이름부터 '다국가'다. ASAP C가 실제로 몇 개 국가의 규제를 커버하고 해외 고객을 확보하는지가, 회사가 밝힌 글로벌 시장 진출 계획의 실행 속도를 말해 준다1.
15억의 검증 기간 안에 그 판단을 시장이 믿게 만드는 것 — 다음 3년의 숙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