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현장에서 불량은 오랫동안 '귀'로 잡아 왔다. 숙련 작업자가 기계 소리를 듣고 제품과 설비의 이상을 가늠하는 방식은 수십 년간 바뀌지 않았고, 그 판단은 숫자로 남지 않았다1. 그 청력을 리슨 AI라는 데이터 공정으로 옮긴 회사가 있고, 거기에 중소벤처기업부가 2년·8억원의 검증 티켓을 붙였다1. 글로벌 완성차 생산라인에서 이미 돌아가는 솔루션을 '어느 공장에서도 되는 표준형'으로 다듬으라고 정부가 돈을 댄 셈이다1.

숙련공의 귀 음향 AI로 수치화 완성차 라인 실증 산업 범용 표준형
8억 TIPS 일반트랙 · 2년 R&D · 중소벤처기업부1
99.87% 리슨 AI 검사 정확도 · 완성차 국내외 라인 적용 중1
25억 2026년 6월 투자 · 데브시스터즈벤처스 외 2곳1

왜 '소리'였나 — 가장 오래된 검사 감각이 가장 늦게 데이터가 됐다

카메라와 딥러닝이 결합한 비전 검사는 이미 제조 라인의 표준 장비가 됐다. 그런데 눈으로 잡히지 않는 불량이 있다. 구동부 부품 내부의 마찰, 커넥터가 끝까지 들어갔는지 아닌지의 차이는 겉모습이 아니라 소리로 드러난다. 그래서 이 영역은 지금까지도 숙련 작업자의 청력에 맡겨져 왔고, 그 판단 근거는 사람의 머릿속에만 남았다1. 작업자가 퇴직하면 검사 기준도 함께 나간다.

디플리의 리슨 AI는 구동부 부품이 작동할 때 나는 소리를 분석해 품질 이상을 판별하는 솔루션이다. 회사가 공개한 검사 정확도는 99.87%1. 그러나 이 회사의 핵심은 정확도 소수점이 아니다. 작업자의 감각에 의존하던 검사 결과를 수치로 바꿔 공정 관리 데이터로 넣었다는 것, 그것이 리슨 AI가 판 것이다1. 판정이 숫자가 되는 순간 불량률 추이, 설비별 편차, 교대조별 차이가 전부 관리 대상이 된다.

적용 범위는 이미 실증 단계를 넘겼다. 커넥터 체결 공정에서는 체결 소리의 차이로 미체결과 불량 체결을 가려내며,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와 부품사의 국내외 생산라인에서 실제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1. 완성차 H그룹 계열사의 국내·멕시코 공장이 도입처로 알려져 있고2, 지난 9월에는 자동차 체결 로봇 공정에 공급되며 99.9% 검사 정확도를 구현했다고 밝혔다2. 사람 손이 아니라 로봇이 체결하는 공정에서도 소리가 판정 기준이 된 것이다.

이 성능의 밑바닥에는 데이터가 있다. 디플리는 8년여간 쌓은 1,000만 개 이상의 제조 공정 이벤트 데이터와 210만 시간 이상의 공장 소음 데이터로 제조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었다26. 음향학·머신러닝 특허는 12건을 출원·등록했고 그중 4건이 등록을 마쳤다6. 음향·신호처리 분야 대표 학회인 ICASSP에는 2024년과 2025년 2년 연속 논문을 올렸다56. 공장 소음은 인터넷에서 긁어올 수 없는 데이터다. 이 데이터 자산이 후발 주자가 가장 따라오기 어려운 지점이다.

숙련공의 귀 vs 리슨 AI — 다섯 줄로 보는 검사 공정의 변화

영역전통 청음 검사디플리 리슨 AI
판정 주체숙련 작업자의 청력과 경험음향 AI 모델 · 정확도 99.87%1
결과 기록감각 판단 · 데이터로 남지 않음수치화해 공정 관리에 투입1
분석 대역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영역가청 영역 + 초음파 분석 (TIPS 과제)1
새 라인 도입작업자 재숙련 · 라인마다 대규모 데이터 재수집사전 학습 모델 + 소량 현장 데이터1
확장 범위공장·라인 단위의 개인기자동차 → 로봇·반도체·모빌리티 표준형1

표의 왼쪽은 나쁜 방식이 아니다. 숙련공의 청음은 수십 년간 실제로 작동해 왔다. 문제는 그 능력이 사람 한 명에 묶여 있고, 라인이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오른쪽 컬럼의 아래 두 줄, 즉 '새 라인 도입'과 '확장 범위'가 이번 TIPS 과제가 정확히 겨냥하는 칸이다1.

정부가 사는 것은 정확도가 아니라 '범용성'이다

제조 AI가 현장에 퍼지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로 한 가지다. 한 공장에서 99%가 나와도, 옆 공장으로 옮기면 데이터를 처음부터 다시 모아야 한다. 높은 탐지 정확도만큼이나 공장과 설비가 달라져도 성능이 유지되는 범용성이 요구되는 이유다1. 디플리가 TIPS 과제로 풀겠다고 내건 것도 정확히 이 부담이다1. 2년·8억원의 R&D는 세 갈래로 쓰인다.

  1. 소량 데이터 학습 사전 학습 모델을 바탕으로 적은 양의 현장 데이터만으로 설비와 공정에 맞는 분석 모델을 구축한다. 라인이 바뀔 때마다 대규모 데이터를 새로 수집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1. 210만 시간의 공장 소음으로 만든 파운데이션 모델이 이 단계의 밑천이다26.
  2. 초음파 분석 사람의 귀가 닿지 않는 대역까지 분석 범위를 넓힌다. 가청 영역에서는 잡히지 않던 이상 신호를 검사 대상에 포함시켜, 숙련공도 못 듣던 불량을 잡는다는 구상이다1.
  3. 운영 플랫폼 여러 제조 환경에 같은 방식으로 붙일 수 있는 표준형 제품으로 리슨 AI를 고도화한다. 로봇·반도체·모빌리티 등 서로 다른 제조 분야에서 솔루션 도입 기간을 줄이는 것이 최종 목표다1.

세 갈래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자동차 라인에서 증명한 것을, 자동차가 아닌 라인에서도 짧은 시간 안에 재현하겠다. 이것이 되면 리슨 AI는 '완성차용 검사 솔루션'에서 '제조업용 음향 인프라'로 티어가 바뀐다.

“사람의 청력과 경험에 의존하던 검사를, 데이터 기반 공정으로 전환한다.” — 디플리 공식 포지셔닝, TIPS 선정 자료1

The Bet — 왜 25억 투자 두 달 뒤의 8억이 더 중요한가

디플리는 지난 6월 데브시스터즈벤처스·수인베스트먼트캐피탈·노틸러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25억원을 유치했고, 8월 TIPS 일반트랙에 선정됐다1. 생산라인에서 축적한 적용 사례와 다른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사업성이 투자와 선정 양쪽의 근거였다1. 금액만 보면 8억은 작다. 그러나 두 돈의 성격이 다르다.

The Bet

VC는 이미 만들어진 완성차 레퍼런스와 다음 산업으로 넘어갈 사업성을 샀다1. 정부 R&D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 즉 '다음 공장에서도 되는가'를 산다. 제조 AI 회사가 첫 고객에서 두 번째 산업으로 넘어가는 구간은 자본보다 검증 시간이 병목이다. TIPS 8억은 그 병목에 2년의 시간을 붙여 준 돈이다1. 그리고 그 시간을 어디에 쓸지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8월 영국 어쿠스틱 에이아이 시스템과 리슨 AI 독점 판매 계약을 맺고 항만 예지보전과 안전 관제 시장을 겨냥했다34. 글로벌 베어링 기업 SKF의 미래 산업 챌린지 2026에서는 108개사 가운데 파이널 10개사에 들었다5. 항만도, 베어링도 자동차 라인이 아니다. 자동차 밖에서 첫 신호가 이미 두 개 잡힌 상태에서, 정부가 범용화 비용을 대는 구도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1. 자동차 밖 첫 유료 레퍼런스 TIPS 과제가 명시한 로봇·반도체·모빌리티 가운데 어느 라인이 먼저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는가1. 여기서 첫 계약이 나오면 '완성차 협력사 솔루션'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진다.
  2. 영국 파트너의 첫 항만 계약 독점 판매 계약은 유통 채널이지 매출이 아니다34. 어쿠스틱 에이아이 시스템이 예지보전·안전 관제 영역에서 실제 도입처를 만들어 내는지가 해외 확장의 진짜 시험대다.
  3. 도입 리드타임의 숫자 공개 소량 데이터 학습이 새 라인 도입 기간을 얼마나 줄였는지, 회사가 이를 수치로 내놓는지 본다1. 정확도 99.87%는 이미 공개됐다1. 다음에 공개돼야 할 숫자는 '며칠 만에 붙였는가'다.
결국 디플리는 공장의 '귀'를 판다. 사람 한 명에 묶여 있던 감각을 라인 어디든 붙는 데이터로 바꾼 회사다.
그 귀가 자동차 밖에서도 들리는지가, 다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