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재활용장은 도시 자원순환의 마지막 아날로그 구간으로 남아 있었다. 주민이 내놓고, 경비실이 모으고, 수거차가 실어 가는 사이 투명 페트병은 라벨과 이물, 다른 플라스틱과 섞여 원료로서의 값을 잃는다. 그 자리에 AI 회수기를 놓겠다는 회사가 있었고, 거기에 수원시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이노버스가 수원시 관내 아파트에 50억원을 투자해 무인회수기 400대를 깐다1.
왜 '아파트'였나 — 가장 일상적인 배출지가 가장 비어 있던 자리였다
무인회수기 자체는 낯선 물건이 아니다. 문제는 어디에 놓이느냐였다. 이노버스가 밝힌 대로 공동주택(아파트)을 대상으로 한 무인회수기 도입은 국내 최초다1. 뒤집어 읽으면, 시민 대다수가 매일 페트병을 내놓는 가장 일상적인 배출지에 회수기가 지금까지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관리사무소·경비·수거업체가 각자 다른 이해를 갖는 곳이고, 장비 하나를 들이는 데도 합의가 여러 겹 필요하다. 그래서 회수기는 그동안 아파트 담장 밖에 머물렀다.
이노버스는 그 담장을 단지 단위로 넘어 왔다. 현재 전국 150여 개 아파트 단지에서 '쓰샘'을 운영하고 있고, 경기남부를 주력 권역으로 삼아 자원순환 인프라를 넓혀 왔다1. 단지마다 설득하고, 설치하고, 고장 나면 고치는 방식이다. 느리지만, 이 방식으로 쌓인 운영 이력은 지자체가 사업자를 고를 때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증거가 된다.
수원시 협약은 그 단지별 영업을 지자체 단위 일괄 배치로 바꾼다. 올해 150대, 2027년까지 400대다1. 회사가 밝힌 기준으로 단일 지방자치단체 규모로는 경기도는 물론 국내와 아시아를 통틀어 최대다1. 숫자보다 중요한 건 돈의 방향이다. 지자체가 예산을 대고 회사가 납품하는 조달 구조가 아니라, 회사가 50억원을 대고 지자체가 아파트의 문을 여는 구조다. 수원시는 설치 장소 수요 조사를 맡고, 설치·유지관리(A/S)·IoT 기반 회수량 데이터 관리·분석·이용자 포인트 적립 보상 운영은 전부 이노버스 몫이다1.
이 배치는 이노버스가 회수기 판매 회사가 아니라는 걸 드러낸다. 회사는 스스로를 PET 재활용품 유통 기업으로 소개한다1. 회수기는 상품이 아니라 원료를 확보하는 입구다. 아파트에 400대를 깔아 두면, 수원에서 나오는 투명 PET 의 첫 손을 회사가 쥐게 된다. 50억원은 장비값이 아니라 원료 공급망을 도시 단위로 선점하는 비용이다.
전통 재활용장 vs 쓰샘이 들어간 아파트 — 무엇이 바뀌나
아래 표는 공동주택 분리수거장의 통상 흐름과, 이노버스가 협약에서 맡은 역할을 층별로 나눈 것이다. 회사 측 항목은 협약 내용과 회사 소개를 기준으로 정리했고, 전통 방식은 업계 일반론이다.
| 업무 영역 | 전통 공동주택 재활용장 | 쓰샘 RePET 이 들어간 아파트 |
|---|---|---|
| 배출 지점 | 분리수거장에 자율 배출, 관리 주체 분산 | 단지 내 AI 무인회수기에 투입1 |
| 품질 선별 | 수거 후 사람 손으로 분류, 이물·잡플라스틱 혼입 | AI 판별로 투명 PET 만 고품질로 회수1 |
| 주민 참여 동기 | 의무·캠페인 안내문 | 리워드 앱 '리턴' 포인트 적립1 |
| 회수량 데이터 | 수거업체 단위 추정치 | IoT 기반 기기별 회수량 관리·분석1 |
| 후단 유통 | 수거업체 경유, 원료 품질 불투명 | 이노버스가 재활용 원료로 직접 공급1 |
표에서 마지막 행이 핵심이다. 앞의 네 행은 회수기 회사라면 누구든 흉내 낼 수 있는 레이어지만, 회수한 투명 PET 를 재활용 원료로 직접 유통하는 후단이 붙어야 앞단의 투자 논리가 닫힌다1. 이노버스가 회수기와 앱을 자체 개발하면서도 스스로를 유통 기업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1. 하드웨어와 앱은 원료를 모으는 수단이고, 수익은 모인 원료가 어디로 팔리느냐에서 난다.
50억이 사는 것 — 협약이 이노버스에 맡긴 세 층
협약은 이노버스의 역할을 세 가지로 적었다. 설치와 유지관리, IoT 기반 회수량 데이터 관리·분석, 이용자 포인트 적립 보상 시스템 운영이다1. 이 셋은 각각 다른 자산을 만든다.
- 하드웨어 층 — 설치와 A/S 쓰샘 RePET 을 수원시 관내 공동주택에 올해 150대, 2027년까지 400대 설치하고 유지관리까지 맡는다1. 회수기 사업의 진짜 원가는 설치가 아니라 고장 대응이다. 400대를 지자체 한 곳에 몰아 두면 A/S 동선이 짧아지고, 이 밀도가 대당 운영비를 결정한다.
- 데이터 층 — IoT 회수량 관리·분석 어느 단지에서, 언제, 얼마나 투명 PET 가 나오는지를 기기 단위로 기록한다1. 아파트 재활용은 대체로 수거업체의 추정치로만 존재해 왔다. 단지·시간대 단위 회수량은 지자체에는 정책 근거가 되고, 회사에는 원료 공급을 예측하는 모델이 된다.
- 보상 층 — 리턴 앱 포인트 자체 개발한 리워드 앱 '리턴'으로 이용자에게 포인트를 적립한다1. 회수기는 주민이 병을 넣어야 의미가 있다. 캠페인이나 의무가 아니라 개인 계정에 쌓이는 보상으로 배출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장치이고, 이 앱이 곧 회사가 시민과 직접 연결되는 유일한 접점이다.
The Bet — 수원시는 왜 이노버스를 골랐고, 이노버스는 왜 50억을 걸었나
수원시 쪽의 계산은 단순하다. 아파트에 회수기를 넣으려면 단지별 합의와 유지관리, 주민 보상까지 한 사업자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그걸 150여 개 단지에서 이미 해 본 회사가 경기남부에 있었다1. 시는 설치 장소 수요 조사로 문을 열고, 투자와 운영은 회사가 진다1. 이노버스 쪽의 계산은 더 길다. 회사의 본업은 PET 재활용품 유통이고, 유통업의 병목은 언제나 고품질 원료의 안정 조달이다1. 400대가 깔린 도시는 그 자체로 회수 물량이 예측되는 원료 산지가 된다. 50억원은 회수기 400대의 값이 아니라, 한 도시의 투명 PET 배출을 데이터와 보상으로 묶어 2027년 이후에도 회사 쪽으로 흐르게 만드는 값이다1. 리스크도 같은 자리에 있다. 회수량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주민 참여가 앱 설치 단계에서 멈추면, 50억은 원료 공급망이 아니라 감가상각되는 철제 박스 400개로 남는다. 대당 회수량, 앱 참여율, 협약 기간과 투자 회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 2026년 150대 설치 속도 협약은 올해 150대를 약속했다1. 아파트는 단지별 동의가 필요해 계획과 실제 설치 사이에 시차가 생기기 쉽다. 연말 기준 실제 가동 대수가 150에 얼마나 근접하는지가 400대 로드맵의 신뢰도를 결정한다.
- 대당 회수량과 리턴 앱 참여율 IoT 로 회수량을 기기 단위로 잡는 만큼 데이터는 존재한다1. 문제는 공개 여부다. 단지당 월 회수량, 앱 가입 주민 비율 같은 수치가 시 또는 회사 쪽에서 나오기 시작하면 이 모델의 단위 경제성을 외부에서 처음 검증할 수 있다. 현재는 어느 쪽도 공개되지 않았다.
- 두 번째 지자체 이노버스는 경기남부를 주력 권역으로 밝히고 있다1. 수원 모델이 '회사가 투자하고 시가 문을 여는' 계약 양식으로 굳어지면, 같은 양식이 인접 지자체로 복제되는지가 이 회사가 단지 영업 회사에서 도시 인프라 사업자로 넘어가는 분기점이다.
수원 400대가 원료 공급망으로 바뀌는지가, 다음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