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약물접합체(ADC)는 암세포를 찾는 항체, 약물을 매다는 링커, 세포 안에서 터지는 페이로드가 하나로 조립돼야 약이 되는데, 이 시장의 경쟁은 오랫동안 ‘어느 부품 하나를 더 잘 만드느냐’의 싸움이었다. 트리오어는 항체를 가리는 마스킹 플랫폼 TROCAD와 링커·페이로드 플랫폼 TROSIG를 동시에 들고 나왔고, 2025년 11월 셀트리온과 5,220억원 규모 기술이전을 묶었다13. 그 회사에 한국산업은행 120억원을 포함한 시리즈C 330억원이 붙었다1. 누적 770억원, 이제 플랫폼이 아니라 임상을 사야 할 시간이다1.
왜 ‘플랫폼 둘’이었나 — 항체의 문제와 링커의 문제는 서로 다른 문제다
ADC 는 두 곳에서 깨진다. 항체가 암세포만이 아니라 정상 조직에도 붙으면 약은 듣는 용량과 해치는 용량 사이의 간격, 즉 치료지수를 잃는다. 링커가 혈액 속에서 먼저 풀리면 페이로드가 표적에 닿기 전에 새어 나간다. 하나는 항체 엔지니어링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접합 화학의 문제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두 문제를 한 팀이 동시에 푸는 경우는 드물다.
트리오어의 첫 번째 플랫폼 TROCAD는 앞의 문제를 겨눈다. 회사는 이를 “항체 기반 치료제의 치료지수 개선을 위한 이중기능 마스킹 플랫폼”으로 정의한다1. 항체를 가려 두었다가 필요한 곳에서 작동시키는 마스킹은 ADC 뿐 아니라 일반 항체 치료제에도 적용 가능한 축이고, 회사 역시 항체 치료제와 ADC 신약 후보물질을 함께 개발한다고 밝혔다1. 치료지수는 임상에서 용량을 올릴 수 있는지를 결정하고, 용량은 효능 데이터를 결정한다. 플랫폼이 이 간격을 넓힌다면 후보물질 하나가 아니라 파이프라인 전체의 성공 확률이 달라진다.
두 번째 플랫폼 TROSIG는 뒤의 문제를 겨눈다. 회사는 이를 “ADC 의 약물 안정성과 치료 효능을 높이기 위한 신규 링커·페이로드 플랫폼”으로 설명한다1. 링커가 안정적일수록 혈중 누출이 줄고, 페이로드가 강할수록 적은 약물로 같은 효과를 낸다. 링커·페이로드는 ADC 개발사가 외부에서 도입하는 경우가 흔한 부품인데, 트리오어는 이를 자체 플랫폼으로 들고 있다.
두 플랫폼을 한 회사가 쥐면 사업 모델이 달라진다. 자체 후보물질을 만드는 길과, 외부 항체에 자사 링커를 붙이거나 외부 ADC 에 마스킹을 입히는 공동연구의 길이 동시에 열린다. 회사는 “국내외 바이오텍·글로벌 제약사와 공동연구개발 및 기술이전 등을 통한 사업화”를 명시하고 있다1. 그 길에 먼저 올라탄 것이 셀트리온이다. 회사 홈페이지 뉴스 기준, 트리오어는 2025년 11월 셀트리온과 5,22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3. 이 계약은 플랫폼에 처음으로 외부 가격표가 붙은 사건이었고, 11개월 뒤 시리즈C 의 전제가 됐다.
부품 공급자와 설계자의 차이 — 전통 ADC 바이오텍 vs 트리오어
ADC 바이오텍의 전형적인 경로는 항체 하나, 혹은 링커 하나를 들고 글로벌 제약사의 파트너링 테이블에 앉는 것이다. 부품이 좋으면 라이선스가 나가지만, 조립의 주도권은 사는 쪽에 있다. 트리오어의 포지션은 조립의 두 축을 모두 자기 손에 두는 것이고, 그 차이는 사업화 경로와 자금 구조에도 드러난다.
| 영역 | 전통 ADC 바이오텍 | 트리오어 |
|---|---|---|
| 플랫폼 구성 | 항체 또는 링커 단일 축 | 마스킹(TROCAD) + 링커·페이로드(TROSIG) 이중 축1 |
| 치료지수 접근 | 용량·투약 스케줄 조정에 의존 | 항체 자체를 마스킹해 치료지수 개선1 |
| 링커·페이로드 | 외부 도입 또는 기존 링커 재사용 | 자체 신규 링커·페이로드 플랫폼1 |
| 사업화 경로 | 후보물질 단위 라이선스 아웃 | 공동연구 + 기술이전 병행 · 셀트리온 5,220억원 계약13 |
| 자금 구성 | VC 중심 | 산업은행 120억 · 국민성장펀드 50억 + VC 혼합1 |
770억은 어떻게 쌓였나 — 검증, 가격표, 그리고 임상 자금
트리오어의 자금 이력은 세 구간으로 읽힌다. 플랫폼이 작동하는지를 보여 준 구간, 플랫폼에 가격이 붙은 구간, 그리고 그 가격을 임상 데이터로 바꾸기 위한 구간이다. 라운드 금액이 50억에서 330억으로 커지는 동안, 각 구간의 끝에는 외부 검증이 하나씩 놓여 있다.
- 검증기 — 2022~2023 2022년 2월 프리 시리즈A 50억원, 2023년 5월 시리즈A 120억원이 들어왔다3. 같은 2023년에 중기부 아기유니콘으로 선정됐고, 서울-BMS 이노베이션 스퀘어 챌린지에서 우승했다3. 글로벌 제약사의 이름이 붙은 챌린지 우승은 플랫폼이 외부 과학자의 눈을 통과했다는 첫 신호였다.
- 가격표 — 2025 2025년 8월 시리즈B 를 누적 250억원 규모로 마감했다3. 석 달 뒤인 11월, 셀트리온과 5,220억원 규모 기술이전 계약이 발표됐다3. 투자자 관점에서 시리즈B 는 이 계약 직전에 들어간 라운드가 됐다.
- 임상 자금 — 2026 2026년 7월 스케일업 팁스에 선정됐고3, 10월 22일 시리즈C 330억원을 두 차례에 걸쳐 마감했다1. 1차 240억원은 신규 투자자 중심, 2차 90억원은 기존 투자자 후속이다1. 자금은 선도 후보물질의 전임상·임상 개발과 플랫폼 적용 범위 확대에 쓰인다1.
The Bet — 산업은행과 국민성장펀드는 무엇을 샀나
이번 라운드의 신규 투자자 명단은 길다. 한국산업은행, DS자산운용, HB인베스트먼트, 세이지원파트너스, 테스투자파트너스, 허니팟벤처스가 들어왔다1. 그중 산업은행이 120억원으로 라운드의 3분의 1 이상을 책임졌고, DS자산운용은 국민성장펀드를 재원으로 50억원을 넣었다1. 기존 투자자인 우리벤처파트너스, LSK인베스트먼트, 신한캐피탈, 스닉픽인베스트먼트는 2차 90억원의 후속 투자에 참여했다1. 정책자금이 앞에 서고, 기존 VC 가 뒤를 받친 구조다.
DS자산운용은 투자 근거를 이렇게 밝혔다. “독자적인 ADC 플랫폼 기술과 경쟁력 있는 파이프라인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이라고 판단했다”1.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국내 바이오 혁신기업의 연구개발과 글로벌 사업화를 지원”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1. 플랫폼, 파이프라인, 글로벌 사업화. 세 단어가 이 베팅의 논리다.
플랫폼 바이오텍의 가치는 임상 데이터가 나오기 전까지 계약 규모로만 측정된다. 트리오어에는 셀트리온 5,220억원이라는 가격표가 있지만, 그 금액이 선급금과 마일스톤으로 어떻게 나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3. 투자자들이 산 것은 그 가격표를 전임상·임상 데이터로 바꿀 수 있는 자금과 시간이다1. 후보물질이 임상에 들어가 치료지수 개선이 사람에게서 확인되면 두 플랫폼은 셀트리온 외의 파트너에게도 같은 가격을 요구할 수 있다. 반대로 임상이 늦어지면 누적 770억원은 아직 데이터 없는 플랫폼에 쌓인 기대가 된다1. 산업은행의 120억원은 그 기대를 정책자금이 먼저 받아 안았다는 뜻이다1.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 선도 후보물질의 임상 진입 회사는 이번 자금을 “선도 후보물질의 전임상·임상 개발”에 쓴다고 명시했다1. 어느 후보물질이 먼저 임상에 들어가는지, 항체 치료제인지 ADC 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첫 임상시험계획 제출 시점이 플랫폼 가치의 첫 번째 실측치가 된다.
- 셀트리온 이후 두 번째 계약 회사는 “국내외 바이오텍·글로벌 제약사와 공동연구개발 및 기술이전”을 사업화 경로로 두고 있다1. 셀트리온 계약 하나로는 플랫폼의 재현성을 말할 수 없다. 다른 파트너가 TROSIG 링커를 자사 항체에 붙이거나 TROCAD 마스킹을 도입하는 두 번째 딜이 나오면, 5,220억원은 단발이 아니라 가격 기준점이 된다3.
- 플랫폼 적용 범위와 다음 자금 회사는 “플랫폼 적용 범위 확대”를 자금 용처에 포함했다1. 적용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파이프라인 수가 늘어난다는 뜻이고, 파이프라인은 다시 자금을 요구한다. 누적 770억원 이후의 자금 조달 계획, 즉 추가 라운드나 상장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1.
그 설계도가 임상 데이터로 바뀌는지가, 다음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