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부장에서 시선은 늘 장비 본체와 공정 챔버에 쏠려 왔다. 화학물질과 가스가 챔버까지 흘러가는 배관은 그 그늘에서 '부속'으로 취급됐다. 그 배관의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하겠다는 대전 스타트업 헤시스가 등장했고, 거기에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와 그래비티벤처스의 시드 자금이 붙었다1.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예비창업패키지에서 시드까지 한 기관이 3년을 함께 걸어온 경로 자체가 이번 딜의 서사다1.

예비창업패키지 → 프리팁스 · 디딤돌 R&D → 시드 투자 → TIPS · 해외 공급망
Seed 이번 라운드 · 대전혁신센터·그래비티벤처스 공동 GP 조합 · 금액 비공개1
3건 예비창업패키지 · 프리팁스 · 디딤돌 첫걸음 R&D 정부 프로그램 연속 선정1
3년 2023년 예비창업 선정에서 2026년 시드 투자까지1

왜 '배관'이었나 — 웨이퍼가 아니라 웨이퍼로 가는 길에 베팅했다

헤시스를 설명하는 문장은 한 줄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화학물질과 가스가 이동하는 배관의 온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열관리 솔루션을 개발하는 대전 소재 스타트업1. 짧지만 이 한 줄이 가리키는 위치가 중요하다. 반도체 공정에서 물질은 저장 탱크에서 배관을 거쳐 챔버에 도달하고, 그 경로의 온도가 흔들리면 흘러가는 물질의 상태도 흔들린다. 배관 열관리라는 카테고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헤시스는 장비 본체나 챔버가 아니라 그 '경로'를 제품화 대상으로 골랐다1.

이 선택은 소부장 스타트업의 전형적 포지셔닝과 결이 다르다. 장비 본체 시장은 글로벌 장비사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고, 신생 회사가 정면으로 들어가기엔 검증 기간과 자본이 크다. 반면 배관 열관리는 어떤 장비를 쓰든 물질이 이동하는 한 필요한 층위다. 큰 장비사와 정면으로 붙지 않으면서, 모든 장비가 공통으로 필요로 하는 층위를 잡겠다는 선택이다. 대전혁신센터가 헤시스를 '반도체 공정 열관리 전문기업'으로 규정한 것도 이 위치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1.

다만 공개된 정보의 한계도 분명히 해야 한다. 제품의 구체적인 사양, 제어 정밀도, 확보한 고객사, 매출은 이번 발표에 담기지 않았다1. 지금 시점에서 헤시스의 기술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공개 근거는 정부 프로그램 선정 이력이다. 회사는 2023년 대전혁신센터가 운영한 중소벤처기업부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되며 창업했고, 2026년 들어 중소벤처기업부 프리팁스(Pre-TIPS)와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 '디딤돌 첫걸음 R&D'에 연이어 선정됐다1. 대전혁신센터는 이를 “사업성과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고 표현했다1.

대전이라는 지역성도 서사의 일부다. 헤시스는 대전 소재 스타트업이고, 창업의 출발점이 된 예비창업패키지도 대전혁신센터가 운영했다1. 대전혁신센터는 이번 투자를 “지역 기술창업 지원의 성과”로 자리매김했다1. 즉 이번 시드는 헤시스 한 회사의 이벤트이면서, 동시에 대전이라는 지역이 반도체 소부장 창업을 예비 단계부터 투자까지 끌고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설계된 딜이다.

전형적 소부장 창업과 무엇이 달랐나 — 자금과 검증의 경로 비교

헤시스가 밟은 경로를 소부장 스타트업의 일반적인 경로와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핵심은 '누가 검증했고, 그 검증이 다음 단계로 어떻게 연결됐는가'다.

영역전형적 소부장 스타트업헤시스 경로
기술 초점장비 본체 · 공정 챔버화학물질·가스 배관의 온도 정밀 제어1
창업 출발점자기자본 · 엔젤중기부 예비창업패키지 (2023, 대전혁신센터 운영)1
초기 기술 검증고객 PoC 대기프리팁스 · 디딤돌 첫걸음 R&D 연속 선정 (2026)1
첫 기관 투자민간 VC 단독 시드대전혁신센터·그래비티벤처스 공동 GP 개인투자조합1
다음 단계시리즈 A 직행TIPS 추천 연계 + 글로벌 액셀러레이팅으로 해외 공급망1

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투자 비히클이다. 이번 시드는 대전혁신센터와 그래비티벤처스가 공동 업무집행조합원으로 참여해 2023년 결성한 '대전-비전 벤처스타 개인투자조합'을 통해 집행됐다1. 조합이 결성된 해와 헤시스가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된 해가 같다1. 공공 액셀러레이터가 예비 단계에서 발굴한 회사를, 같은 시기에 만든 자기 조합으로 투자까지 끌고 간 구조다. 검증한 주체와 투자한 주체가 같다는 것은, 이 시드가 외부 실사보다 3년의 관찰에 기반한 결정이라는 뜻이다.

예비창업에서 시드까지, 세 단계로 쌓인 검증

  1. 예비창업패키지로 출발 헤시스는 2023년 대전혁신센터가 운영한 중소벤처기업부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되며 창업을 시작했다1. 아이디어 단계에서 정부 프로그램이 첫 자금과 육성을 맡은 셈이다. 이 단계에서 대전혁신센터는 이미 회사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 관찰이 이후 모든 단계의 밑바탕이 됐다.
  2. 정부 R&D 스택으로 기술 검증 2026년 들어 중소벤처기업부 프리팁스와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 '디딤돌 첫걸음 R&D'에 연이어 선정됐다1. 이름 그대로 프리팁스는 TIPS 의 전 단계이고, 디딤돌 첫걸음은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의 초기 과제다. 두 프로그램의 심사를 같은 해에 통과했다는 것이 대전혁신센터가 말하는 '기술 경쟁력 입증'의 실체다1.
  3. 시드 투자와 TIPS 연계 대전혁신센터와 그래비티벤처스가 공동 GP 인 개인투자조합이 시드를 집행했다1. 대전혁신센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TIPS 추천을 연계해 추가 연구개발 자금 확보를 지원하고, 글로벌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해외 반도체 공급망 진출과 글로벌 시장 확대를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1. 시드가 종착점이 아니라 TIPS 로 가는 관문으로 설계됐다.

세 단계를 관통하는 것은 대전혁신센터라는 하나의 주체다. 예비창업패키지를 운영한 것도, 프리팁스·R&D 선정을 '입증'이라 평가한 것도, 시드를 집행한 조합의 공동 GP 인 것도, TIPS 추천을 연계하겠다는 것도 같은 기관이다1. 헤시스 입장에서는 단계마다 새로운 투자자를 설득할 필요 없이 한 기관과의 관계를 깊게 만드는 것이 성장 경로였다. 단일 기관이 발굴·검증·투자·후속을 모두 맡는 구조는, 초기 회사에는 가장 빠른 길이면서 동시에 가장 좁은 길이다.

“이번 시드 투자는 대전 지역의 예비창업 기업을 발굴해 프리팁스와 정부 R&D, 투자 단계까지 연결한 공공 액셀러레이팅의 대표 사례다.”1 — 박대희,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

The Bet — 3년을 지켜본 공공 액셀러레이터가 자기 조합의 돈을 넣었다

시드 라운드에서 투자자가 무엇을 샀는지는 보통 금액과 밸류에이션으로 읽는다. 이번 딜은 둘 다 공개되지 않았다1. 그래서 거꾸로 읽어야 한다. 대전혁신센터와 그래비티벤처스는 왜 하필 지금, 공개 숫자 없이도 자기 조합의 자금을 이 회사에 넣었나. 답은 발표문 안에 있다. 이번 투자는 “예비창업 단계부터 정부 지원사업 연계, 직접 투자, 글로벌 진출 지원까지 이어지는 공공 액셀러레이팅의 전주기 지원 모델”이라는 것이다1.

The Bet

이 시드에서 대전혁신센터와 그래비티벤처스가 산 것은 특정 매출 지표가 아니다. 공개된 숫자가 없기 때문이다1. 대신 산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배관 열관리라는 위치다. 장비 본체 경쟁을 피하면서 공정 전반이 공통으로 필요로 하는 층위이고, 해외 반도체 공급망에 들어가면 장비 종류와 무관하게 확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1. 둘째, 2023년 예비창업부터 2026년 프리팁스·디딤돌 R&D 까지 세 번의 정부 심사를 통과한 이력이다1. 공공 액셀러레이터 입장에서는 자기가 발굴해 3년을 관찰한 회사에 자기 조합으로 투자하는 것이 가장 정보 비대칭이 적은 베팅이다. 리스크도 분명하다. 고객사와 매출이 공개되지 않았고, 후속 TIPS 선정은 아직 '계획'이다1. 이 베팅은 헤시스가 TIPS 를 통과하고 해외 공급망에 첫 레퍼런스를 만들 때 비로소 회수 경로가 열린다.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1. TIPS 선정 여부 대전혁신센터는 TIPS 추천을 연계해 추가 연구개발 자금 확보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1. 프리팁스에서 TIPS 로 넘어가는지가 이번 시드의 첫 번째 검증 포인트다. 선정되면 정부 R&D 자금이 시드 위에 얹히고, 실패하면 공공 액셀러레이팅 전주기 모델의 마지막 고리가 빠진다.
  2. 해외 반도체 공급망 첫 레퍼런스 글로벌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한 해외 반도체 공급망 진출이 후속 계획으로 명시됐다1. 배관 열관리는 장비와 무관하게 필요한 층위라는 논리가 맞다면, 해외 고객 또는 장비사와의 첫 계약이 나와야 한다. 국내든 해외든, 고객사 이름이 처음 공개되는 시점을 봐야 한다.
  3. 투자 금액과 후속 라운드 공개 이번 시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1. 다음 라운드에서 민간 VC 가 단독으로 들어오는지, 그때 밸류에이션과 금액이 공개되는지가 공공 자금에서 민간 자금으로의 전환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비티벤처스가 후속에도 참여하는지도 신호다1.
결국 헤시스는 반도체 공정의 '주인공'이 아니라 모든 주인공이 지나가는 길을 판다.
그 길이 대전을 넘어 해외 공급망까지 닿는지가, 다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