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은 오랫동안 지상의 명령을 기다리는 기계였다. 궤도에서 모은 정보를 내려보내고, 지상이 분석해 다시 명령을 올려보내는 사이 상황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1. 그 왕복을 위성 안으로 끌어들여, 주변 물체를 스스로 알아보고 접근 경로까지 계산하는 초소형위성을 나라스페이스가 국방 활용안으로 제안했다. 거기에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67억원·52개월 과제가 붙었다1.

방산혁신기업 100 선정 자사 기술 국방 활용 제안 67억 과제 주관기관 2030년 궤도 검증
67억 총 사업 규모 · 정부지원금 50억 + 민간부담금 약 17억1
52개월 2026년 9월 ~ 2030년 12월 · 설계부터 궤도 검증까지1
100 2025년 '방산혁신기업 100' 선정 · 제안형 과제 진입 자격1

왜 '자율 근접운용'이었나 — 명령 왕복이 가장 비싼 곳

기존 위성은 대부분 정해진 임무에 맞춰 설계된다. 주변에 다른 물체가 다가와도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기 어렵다1. 위성이 모은 정보를 지상에서 분석한 뒤 다시 명령을 올려보내는 구조라, 그 과정에서 시간 차이가 생긴다1. 이정규 나라스페이스 사업이사의 표현을 빌리면, 우주에서 발생하는 위험 상황은 지상의 판단과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변한다1. 명령이 도착했을 때 상황은 이미 다른 상황이다. 근접 운용에서 이 시간 차이는 곧 거리다. 상대와의 거리가 명령을 기다리는 사이에도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이번 과제가 겨냥하는 지점이 바로 그 시간 차이다. 상대 물체를 알아보는 단계부터 접근 경로 계산, 궤도 조정까지를 위성 안에서 처리해 판단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1. 판단의 위치를 지상에서 궤도로 옮기는 것, 이것이 과제의 한 줄 요약이다. 위성은 데이터를 보내는 센서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로 바뀐다. 근접운용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동작은 두 가지다.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 그리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1. 접근과 거리 유지 모두 상대의 위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를 정확히 읽는 능력이 먼저다.

더 어려운 조건도 걸려 있다. 검증 대상은 위치와 자세 정보를 미리 공유하지 않는 이른바 '비협조적 우주 물체'1. 회사는 기존 근접 운용 실증이 주로 지상 시험이나 사전에 임무를 맞춘 위성끼리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 과제가 다르다고 설명한다1. 서로 약속하지 않은 물체에 다가가는 것은 협조하는 위성끼리의 접근과는 다른 문제다.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자세인지를 위성이 탑재 카메라로 직접 알아내야 한다1. 상대가 알려주는 정보가 없다는 조건이 이 과제의 난이도를 정한다.

이 과제가 국방 예산으로 추진되는 경로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방산혁신기업 제안형 지원사업'은 '방산혁신기업 100'에 선정된 기업이 자사 기술의 국방 활용 방안을 제안하면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연구개발 과제로 지원하는 방식이다1. 정부가 요구 사양을 내려보낸 것이 아니라, 회사가 자기 기술의 쓰임새를 먼저 정의하고 그 제안이 채택된 구조다. 나라스페이스는 2025년 방산혁신기업 100에 선정된 뒤 이 경로를 밟아 2026년 9월 21일 협약을 맺었고, 다음 날 이를 공개했다1. 과제 기간은 2026년 9월부터 2030년 12월까지 52개월, 규모는 정부지원금 50억원과 민간부담금 약 17억원을 합친 67억원이다1. 제안형이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기술의 국방 쓰임새를 정의한 주체가 회사라는 것, 그리고 그 정의에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예산으로 동의했다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자사 기술의 방향을 정부 과제로 고정한 셈이고, 정부 입장에서는 사양을 직접 쓰지 않고 시장의 제안을 골라 담은 셈이다.

기존 위성 운용과 무엇이 다른가 — 판단의 위치가 바뀐다

영역기존 위성 · 기존 근접운용 실증나라스페이스 과제 위성
상황 인식위성이 모은 정보를 지상에서 분석탑재 카메라로 상대 물체의 위치·자세를 위성이 직접 파악
판단 위치지상에서 판단한 뒤 명령 송신, 시간 차이 발생인식·경로 계산·궤도 조정을 위성 안에서 처리
대응 방식정해진 임무에 맞춰 설계, 주변 물체에 스스로 대응 어려움충돌 회피 경로를 계산해 접근하거나 일정 거리 유지
검증 대상사전에 임무를 맞춘 협조 위성끼리위치·자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비협조적 우주 물체
실증 범위지상 시험 중심의 부분 실증설계·제작·발사·궤도 운용·기술 검증까지 한 회사가 총괄

표에서 왼쪽과 오른쪽을 가르는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판단이 어디서 일어나는가다. 지상 관제가 위성을 조종하던 구조에서, 위성이 자기 주변을 보고 스스로 움직이는 구조로 옮겨간다. 나라스페이스는 이 전환을 초소형위성이라는 작은 플랫폼 위에서 증명하겠다는 것이다1.

마지막 행이 이 회사의 역할 범위를 말해준다. 검증용 초소형위성의 설계와 제작, 발사, 궤도 운용, 기술 검증까지 나라스페이스가 총괄한다1. 알고리즘 한 조각을 납품하는 구조가 아니라, 위성 한 기를 통째로 띄워 결과를 보이는 구조다. 과제의 성패가 회사의 위성 제작·운용 역량 전체에 걸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 초소형위성인지는 발표에 따로 설명되지 않았다. 다만 과제 범위가 설계와 제작, 발사까지 한 회사 안에서 닫힌다는 점1을 보면, 52개월 안에 한 기를 궤도에 올려 검증까지 마치려면 플랫폼이 작고 빨라야 한다는 제약은 읽힌다. 플랫폼이 작을수록 설계에서 검증까지 한 바퀴를 도는 시간과 비용이 줄어든다는 것이 초소형위성의 일반적인 논리이고, 이번 과제는 그 논리를 국방 검증에 그대로 적용한 경우다.

위성 안에서 일어나는 세 단계

과제에서 개발하는 위성의 동작은 세 단계로 정리된다1. 각 단계가 지상을 거치지 않고 위성 안에서 이어진다는 점이 핵심이다.

  1. 인식 탑재 카메라로 상대 물체의 위치와 자세를 파악한다1. 상대는 자기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비협조적 물체이므로, 위성이 본 영상만으로 상대가 어디에 어떤 자세로 있는지를 읽어내야 한다1. 이 단계가 틀리면 뒤의 두 단계는 의미가 없다. 상대의 자세까지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같은 위치에 있어도 자세에 따라 안전한 접근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 경로 계산 파악한 위치와 자세를 바탕으로 충돌을 피하는 접근 경로를 계산한다1. 기존 구조에서는 이 계산이 지상에서 이뤄지고 그 결과가 명령으로 올라갔다1. 이번 과제는 이 단계를 위성 안으로 옮겨 지상 왕복을 없앤다. 충돌 회피가 계산의 전제라는 점도 중요하다. 다가가는 것보다 부딪히지 않는 것이 먼저다.
  3. 궤도 조정 계산된 경로를 따라 상대에게 다가가거나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1. 접근과 거리 유지 두 동작이 모두 검증 범위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단순 회피가 아니라 상대를 기준으로 한 운용이 목표다. 상대가 움직이면 거리 유지도 계속 다시 계산돼야 하므로, 세 단계는 한 번 돌고 끝나는 절차가 아니라 반복되는 루프에 가깝다.

이 세 단계를 궤도에서 돌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만이 아니다. 카메라가 상대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계산 결과대로 위성이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과제 범위에 발사와 궤도 운용이 포함된다1. 다만 발사 시점과 발사체, 검증 대상 물체의 구체적 성격, 위성의 크기와 수량은 공개되지 않았다. 나라스페이스의 기존 위성 실적이나 매출, 투자 이력도 이번 발표에는 담기지 않았다.

총괄이라는 말은 책임의 범위이기도 하다. 설계, 제작, 발사, 궤도 운용, 기술 검증 가운데 어느 하나가 늦어져도 과제 전체가 밀린다1. 특히 발사는 회사가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다. 이 다섯 단계를 한 회사가 끝까지 끌고 간다는 것이 이번 과제가 나라스페이스에 요구하는 실행 역량이고, 동시에 과제가 끝났을 때 회사에 남는 자산이기도 하다.

"우주에서 발생하는 위험 상황은 지상의 판단과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변하기 때문에 대응 속도가 중요하다. 위성이 주변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고 필요한 움직임을 판단하도록 해 의사결정 시간을 줄이는 것이 이번 과제의 핵심이다." — 이정규, 나라스페이스 사업이사1

The Bet — 라벨이 아니라 궤도 실증으로 티어를 바꾼다

The Bet

방산혁신기업 100 선정은 자격이었고, 이번 주관기관 선정은 예산이 붙은 과제다1. 정부지원금 50억원에 회사가 약 17억원을 얹어 52개월 동안 위성을 설계하고 만들고 띄워 궤도에서 검증한다1.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산 것은 초소형위성 제작 능력이 아니라, 위성이 스스로 판단하는 기술을 궤도에서 증명하겠다는 제안이다. 이 검증이 2030년까지 끝나면 나라스페이스는 위성을 만드는 회사에서 비협조적 물체를 상대로 자율 근접운용을 해본 회사로 옮겨간다. 반대로 지상 시험 수준에서 멈추면 기존 실증과의 차별점이 사라진다. 베팅은 결국 한 가지다. 사전에 약속하지 않은 물체를 향해 위성이 스스로 움직이는 장면을 궤도에서 보여줄 수 있는가.

티어가 바뀌는 지점은 선정 자체가 아니다. 방산혁신기업 100은 2025년에 이미 받은 라벨이다1. 바뀌는 것은 그 라벨을 딛고 회사가 스스로 정의한 국방 활용안에 정부가 4년 넘게 예산을 붙였다는 사실이다. 기존 실증은 주로 지상 시험이나 협조 위성 간에 이뤄졌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1. 이 설명대로라면, 궤도 검증을 마치는 순간 나라스페이스는 초소형위성 제작사가 아니라 자율 근접운용을 실제로 해본 회사라는 다른 자리에 서게 된다.

위험은 세 군데에 있다. 첫째, 카메라 기반 인식이 비협조적 물체를 실제 궤도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읽어내는가. 둘째, 발사와 궤도 투입이 일정 안에 이뤄지는가. 셋째, 검증 대상 물체를 어떻게 확보하고 어떤 시나리오로 접근과 거리 유지를 시험하는가. 이 셋 가운데 어느 것도 발표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다만 회사가 다섯 단계 전부를 총괄한다는 것은1, 위험도 전부 회사 쪽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정부지원금 50억원은 그 위험을 회사가 감당하는 조건으로 붙은 돈이다1.

다음 12개월에 지켜볼 지표 3개

  1. 검증용 위성의 설계 확정 과제는 2026년 9월에 시작해 2030년 12월에 끝난다1. 발사와 궤도 운용, 검증을 뒤에 두려면 첫 해 안에 설계가 닫혀야 한다. 위성의 규모와 탑재 카메라의 사양이 공개되는지, 그리고 설계 단계의 완료 시점이 드러나는지가 첫 신호다. 설계가 늦어지면 뒤의 모든 일정이 함께 밀리기 때문에, 첫 12개월의 진척이 과제 전체의 속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2. 발사 일정과 발사체 나라스페이스는 발사까지 총괄한다1. 52개월 안에 궤도 검증을 마치려면 발사 시점이 역산돼야 하고, 발사 이후에도 궤도 운용과 검증에 시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 현재 발사 일정과 발사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둘이 공개되는 시점이 과제의 실행 속도를 보여준다.
  3. 민간부담금 약 17억원의 조달67억원 가운데 약 17억원은 회사 몫이다1. 이 부담을 자체 자금으로 감당하는지, 별도 투자로 채우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조달 방식이 드러나면 회사의 재무 체력과 다음 자본 조달의 성격도 함께 읽힌다. 국방 과제 주관이 투자 유치의 근거로 쓰이는지, 아니면 기존 자금으로 충분한지가 여기서 갈린다.
결국 나라스페이스는 지상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 위성을 판다.
그 위성이 약속 없는 물체 앞에서 스스로 움직이는지가, 2030년의 이야기다.